"20년 만에 뽑는 도쿄필 클라리넷 수석…도전할 수밖에 없었죠"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고국 리사이틀…"더 정열적인 브람스 선보일 것"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오디션을 봤던 때가 마침 한일 관계가 최악을 달리고 있을 때였어요. 사실 한국인 단원으로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입단하고 보니 전혀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어요. 훌륭한 앙상블뿐 아니라 함께 하는 지휘자들도 세계 최고 수준이죠."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33)는 2016년 아시아 정상급 악단인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20년 만에 뽑은 클라리넷 수석으로 화제를 모았다. 1년간의 수습 과정을 거쳐 작년 12월 종신 수석 자리까지 올랐다. 단원 약 150명으로 구성된 이 악단에서 외국인 연주자는 조성호를 포함해 단 3명뿐이다.
16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조성호는 "수습 기간이 끝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쁘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건 똑같다"며 웃었다.
1911년 나고야에서 창단한 도쿄필하모닉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악단이다. 연간 연주 횟수가 약 170회에 달하며 레퍼토리는 정통 교향곡부터 오페라, 발레 음악까지 매우 넓다. 정명훈 지휘자가 명예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도쿄필하모닉 생활에 "만족한다"고 이야기했다.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수석 자리는 대부분 다 차 있어서 입단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수습 기간)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도쿄필하모닉에서 20년 만에 클라리넷 수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도전할 수밖에 없었죠. 국제적 명성을 지닌 오케스트라이자 많은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에요."
일본 악단 특유의 문화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한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리허설을 통해 합을 맞춰 나가지만, 일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첫 리허설 때부터 거의 완벽한 상태로 준비해온다고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특유의 문화가 오케스트라에도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워낙 연주가 많아 리허설 횟수가 적기 때문에 그렇게 연습을 해올 수밖에 없기도 해요. 저도 이제는 이 스타일에 적응해서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한 뒤 리허설에 임하고 있어요. (웃음)"
그는 사실 오케스트라 단원보다는 솔리스트에 가까운 길을 걸어왔다. 선화예중, 선화예고를 수석 입학, 졸업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도독해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대학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수석 클라리넷 주자 벤젤 푹스를 사사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제음악제 콩쿠르 2위를 비롯해 음악저널콩쿠르, 음악춘추콩쿠르, 성정음악콩쿠르, 이화경향콩쿠르 등 다수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주목받았다.
"벤젤 푹스에게 배우면서도 오케스트라 레슨은 받지 않았어요. 그만큼 솔로 연주를 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꼈거든요. 다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솔리스트로 사는 삶만을 고집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도쿄필하모닉처럼 좋은 악단에서의 활동은 솔리스트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네요. 협연이나 실내악 기회도 늘어나는 것 같고요."
현재의 그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음악의 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교향곡부터 협주곡, 오페라 곡까지 가장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고, 가장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오는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독주회 무대도 연다. 도쿄필하모닉 종신 수석 선임 이후 한국에서 여는 첫 단독 리사이틀이다.
브람스 최후의 소나타이자 실내악곡인 '클라리넷 소나타' 전곡(1·2번)을 한 자리에서 연주한다.
"정통 클래식 곡이기 때문에 무겁고 지루하게 들리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곡들은 한동안 작곡을 그만뒀던 말년의 브람스가 한 젊은 클라리네티스트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들입니다. 말년의 브람스보다는 그 젊은 클라리네티스트의 에너지에 초점을 맞춰 연주해보려고 해요. 더 정열적이고 더 로맨틱한 브람스를 들려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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