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성 여부를 떠나…" 상벌위 두루뭉술 결정에 추후 논란 여지 남겨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KBO 상벌위원회는 양의지(31·두산 베어스)에 대한 징계를 확정한 뒤 "고의성 여부를 떠난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라고 사유를 밝혔다.
사실 '고의성 여부'는 입증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징계 수위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KBO 상벌위원회는 "고의성 여부를 떠나"라는 전제로 민감한 부분을 피했다. 그러나 추후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 때 또 다양한 해석을 낳을 여지를 남겼다.
KBO는 12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벌금 300만원과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의 처벌을 부과했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10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방문경기에서 7회말 투수의 공을 잡지 않고 피해 주심이 다칠 뻔한 상황이 벌어졌다.
앞서 양의지가 7회초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였기에 공을 피한 것이 고의적인 행동이지 않았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KBO 상벌위에서도 고의성 유무가 징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됐다.
가장 명쾌한 답은 '고의성이 없으면 무죄', '고의성이 있으면 유죄'다.
그러나 고의성을 외면하고 나니, 처벌 대상은 '위험한 행동'으로 변경됐다.
처벌의 근거인 KBO리그 규정 7항이 정한 '벌금 최고액(300만원)'을 부과하되, 출장 정지 처분은 내리지 않는 타협점을 찾은 모양새다.
KBO는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KBO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순수한 상벌위원회의 의견만으로 결론 내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상벌위원회는 "양의지의 고의성 여부를 확신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KBO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보는 눈이 많은 현대 야구에서 양의지가 고의로 공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불만과 포구 미스 행동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양의지 판례'는 추후 비슷한 사례로 상벌위원회가 열릴 때 비교 대상이 된다.
빈볼 논란이 일어날 때, 징계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고의성이다. 빈볼 논란에 휩싸인 투수 대부분은 "고의로 던진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양의지 논란'의 고의성에 대해 이미 모호한 결론을 내린 KBO 상벌위원회는 또 깊은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논란을 촉발한 '불신'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2월 말 KBO는 프로야구선수협회에 '경기 중 심판위원에 질의 금지(볼 판정 여부, 판정에 대한 어필 등)→감독만이 질의 및 어필 가능하며 선수가 어필할 경우 규칙에 따라 퇴장 조치'라는 내용이 담긴 KBO와 심판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전달했다.
지난 3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오재원(두산)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심판에 묻다 퇴장당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 "말도 못 꺼내는가"라는 하소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KBO는 "당시 오재원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판정에 대해 언급해 퇴장당한 것이다. 문제 제기를 아예 막는 게 아니라, 관중을 자극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퇴장 조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명확한 기준이다. 많은 선수가 "언제 퇴장을 당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김풍기 심판위원장은 "심판과 선수 사이를, 갈등이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셨으면 한다.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 선수들이 의견을 전할 수 있다. 무조건 퇴장시키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 심판들도 팬과 선수들에게 더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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