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비상임위원 퇴임 변호사, 효성 조현준 사건 수임 '논란'
사건 쟁점은 다르지만 당사자는 조현준 효성 회장으로 '동일'
변호사 출신 비상임위원 겸임 규정 '허술'…"변호사 퇴출해야" 지적도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판사' 역할을 하던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이 불명예 퇴진한 직후 효성 조현준 회장의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관한 법원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임한 시점은 조 회장이 총수일가 사익 편취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던 때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라도 '전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비상임위원 퇴임 후 사건 수임 제한 규정이 전혀 없는 탓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아예 변호사를 법원 1심 판결을 내리는 공정위 비상임위원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2일 공정위와 법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김모(57) 변호사는 지난달 2일 조현준 회장의 200억 원대 횡령·배임 사건을 수임했다. 수임료는 수억 원대로 알려졌다.
문제는 시점이다. 공정위 비상임위원이었던 김 변호사는 작년 4월 위촉 후 51차례 열린 소회의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월 중순 사퇴했다.
당시 김 변호사가 속해 있던 공정위 전원회의는 총수일가 사익 편취 혐의로 조사를 받던 조 회장 사건 심판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김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과 공정위 사건은 쟁점이 다르지만,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를 통해 조 회장이 사적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 면에서 얼개가 비슷하다.
만약 검찰이 공정위가 고발한 사건을 기소해 법원에 넘긴다면, 두 사건이 하나로 병합돼 같은 재판부에서 다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비록 쟁점은 다를지라도 공정위 판사 역할을 하다가 불명예 퇴진한 직후 공정위 피심인인 조 회장의 사건을 수임했다는 점에서 '전관'으로서 도의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공정위는 결국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지만, 그 전 효성 측의 전방위 로비 징후가 포착되면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내부 관련자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던 사건이다.
김 변호사는 "공정위 효성 사건은 재직할 때 다루지 않았고 심판에 전혀 영향을 준 바도 없다"며 "당분간 공정위 사건을 맡지 않을 작정이지만 어떤 사건이 공정위에 걸려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정위 사건을 일절 다루지 말라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변호사 출신 전관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비상임위원에 대한 공정위의 사건 수임 제한 규정이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정거래법은 비상임위원이 속한 법인과 관련한 사건 심의·의결에 제척·기피·회피하는 조항을 규정하고 있지만, 퇴임 후에는 아무런 제한 규정이 없다.
공정위는 조사 권한이 있는 부서의 5∼7급 직원도 퇴직 뒤 재취업 심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변호사 출신 비상임위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공정위 관계자는 "변호사 출신 비상임위원은 공무원이 아니어서 퇴임한 후 사건 수임에 제한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사건 처리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이 관련 업무를 하는 법무법인이나 대기업 직원, 전관을 만나면 서면 보고 의무를 두는 '한국판 로비스트' 규정을 운용하고 있다.
비상임위원도 보고 의무가 있지만, 본업을 유지하면 다양한 외부인 접촉이 불가피하기에 보고가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어 '남의 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공정위 비상임위원 4명 가운데 김봉석 위원과 윤현주 위원 등 절반이 변호사로, 비상임이기에 현재도 사건 수임이 가능하다.
두 비상임위원은 비슷한 시점에 임기를 시작해 앞으로 3년 동안 이 비율이 유지된다.
김봉석 위원은 2016년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공정위 법률자문관이라는 경력을 명시하며 '공정거래 분야 지식과 경험'이라는 문구로 광고를 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법무법인 담박에 소속돼 있다.
이런 논란과 구조 탓에 변호사 출신 비상임위원의 활동에 보다 강력한 제한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 전원회의·소회의 참석 의무화 규정 ▲ 재직 중 공정위 피심인 직·간접 사건 수임 금지 및 타 변호사 소개 금지 규정 ▲ 퇴임 후 일정 기간 공정위 피심인 직·간접 사건 수임 금지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아예 변호사를 공정위 비상임위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변호사는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사업소득을 신고하는 개인사업자로비상임위원으로 위촉되면 불성실하게 활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공익을 위한 비상임위원업무가 상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변호사를 비상임위원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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