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윤희상 "희생 아냐…우승할 때 그 자리에 있으려고"
"결정할 때까지는 정말 힘들었다…어린 선발 키우는 게 팀에 도움"
개인 첫 세이브 화려한 세리머니…"생애 처음인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냉정하게 바라보면 '강등' 혹은 '좌천'이었다.
6년 동안 1군에서 붙박이 선발로 활약한 윤희상(33·SK 와이번스) 앞에 '선발 잔류'와 '불펜 전환'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불펜 전환을 택한 뒤에야, 윤희상은 솔직히 말한다.
"4∼5개월 동안 무척 괴로웠습니다."
2017시즌 말미, SK 구단은 윤희상에게 "선발로 남을지, 불펜으로 이동할지 직접 정하라"고 했다.
11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윤희상은 "4∼5개월을 고민했다. 구단은 10월께 구체적인 얘기를 꺼냈지만, 나도 이제 야구를 꽤 오래 했다. 8, 9월부터 내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알았다"며 "당연히 선발로 계속 던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했다. '팀'을 생각하면 답이 이미 나와 있었다. (김)광현이가 돌아와서 강한 1∼3선발을 구축할 우리 팀이 더 강해지려면 4, 5선발은 어린 선수가 맡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제가 불펜으로 가겠습니다.' 결정은 내가 했다"고 괴로웠던 선택의 시간을 떠올렸다.
윤희상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SK 선발의 한 축을 담당했다. 1∼3선발은 아니지만 4, 5선발로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SK 구단은 박종훈(27), 문승원(29), 김태훈(28) 등 윤희상의 후배들에게 선발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 윤희상은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다. 구단은 윤희상이 후회하지 않게, 보직 변경을 자신이 택하게 했다. 윤희상은 "제가 불펜으로 가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과정은 '희생'으로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윤희상은 "결코 희생이 아니다. 나에게는 또 다른 욕심이기도 하다"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화두에 올렸다.
윤희상은 2004년 SK 유니폼을 입었다. 2007∼2010년까지 SK는 4차례 한국시리즈에 나가 3번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윤희상에게는 우승 반지가 없다. 어깨 수술과 재활로 고생했던 그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뛰었다.
윤희상은 "2012년부터는 한국시리즈 선발로 나갔는데, 아쉽게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며 "불펜 이동을 결정하며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내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려면 불펜이어야 한다. 선발로는 경쟁력이 없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희생이 아닌, 우승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결정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더 편해졌다.
윤희상은 "올해 스프링캠프는 정말 편했다. 선발 투수는 투구 수를 충분히 늘려야 하는데 불펜 투수니까, 그 부분에 여유가 있었다"며 "코치님들도 '희상이는 이제 편하게 해'라고 자유 시간을 많이 주셨고, 트레이너께서도 '보직 변경하면 조심해야 할 게 많다'며 더 많이 신경 써 주셨다. 나는 괜찮은데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기도 했다"고 웃었다.
'구원투수 윤희상'의 자리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윤희상은 "아직 적응 단계이긴 하지만 구원 등판하며 재미를 느낀다. SK 투수진에 후배도 많이 늘었는데 함께 즐겁게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한다"고 했다.
감격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10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윤희상은 4-1로 앞선 9회말 등판해 1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세이브를 올렸다.
윤희생은 "생애 첫 세이브였다. 아마추어 때도 나는 늘 선발로만 던졌다"고 했다.
윤희상은 완봉승을 할 때보다 더 화려한 '세이브 세리머니'를 했다. SK 투수들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윤희상을 놀리기도 했다. 윤희상은 "생애 첫 세이브인데 그 정도 기뻐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기분 좋게 항변했다.
한때 시속 150㎞ 이상의 강속구를 뿌리던 윤희상은 선발로 오래 뛰면서 투구 수를 늘리고자 구속을 낮췄다. 불펜으로 이동한 그는 다시 구속을 높이는 중이다.
윤희상은 "노력하고 있지만, 150㎞ 공을 던지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러워 했지만, 이미 그는 10일 LG전에서 최고 시속 148㎞의 직구를 던졌다.
SK 더그아웃에서는 칭찬이 쏟아진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윤희상은 원래 마무리 후보였다. 지금 조금 앞에서 던지지만 우리 팀에 확신을 주는 투수"라고 했다. 윤희상의 심정을 잘 아는 손혁 투수코치는 "윤희상은 정말 고마운 투수다. 팀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은 결단을 했다"며 "불펜 투수 윤희상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윤희상은 더 좋은 투수"라고 응원했다.
윤희상은 다시 한 번 "희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다시 '꿈'을 이야기했다.
"승리는 물론, 세이브나 홀드를 올리는 상황이 아니어도 좋아요. 한국시리즈에서 어떤 상황이라도 등판해서 1이닝을 완벽하게 막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SK가 우승하는 장면을 동료와 함께 지켜보는 것. 이게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가 누리는 거잖아요. 우승, 꼭 해보고 싶어요."
SK는 2018시즌 우승 후보다. 일단 윤희상은 '우승 후보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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