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대통령 "교회와 관계회복"…야당들 "정교분리원칙 훼손" 비난
마크롱 "교회 국가 관계회복 희망"…비판 커지자 내무장관 진화 나서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가톨릭 교회와 국가의 관계 개선 의사를 표명하자 대통령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세속주의 원칙을 해쳤다는 비판이 거세다.
중세 교회와 왕권의 대립, 종교전쟁, 대혁명과 드레퓌스 사건 등을 거친 프랑스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원칙을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강조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연설하고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망가졌다는 생각을 우리는 혼란 속에 공유하고 있다"면서 "여러분들과 제가 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특히 "교회와 가톨릭에 관심을 두지 않는 프랑스의 대통령은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면서 "진실한 대화를 통해" 교회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야권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논쟁을 거치며 100여 년 전 정착된 프랑스의 정교분리·세속주의 전통인 '라이시테'를 해치는 위험한 사고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최근 사회당 서기장(당대표)으로 선출된 올리비에 포르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국가와의 무슨 관계를 회복한단 말인가. 세속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종교도 법에 우선하지 않으며 세속주의는 공화국의 대통령이 보호해야 할 가치"라고 주장했다.
급진좌파 정당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대표인 장뤼크 멜랑숑 의원도 대통령이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면서 더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대통령에게서 하급 성직자 같은 얘기를 듣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망가진 것이 아니라 1905년에 분리된 것이다. 정교분리원칙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모든 종교적 근본주의에 정치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프랑스 정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종교문제를 관할하는 제라르 콜롱 내무장관은 트위터에서 "대통령이 말하고자 한 바는 인간존재에는 물질적 세계뿐 아니라 절대적 가치, 영성, 삶의 의미에 대한 추구도 중요하다는 뜻"이라면서 "(이런 발언이) 새로운 의견일지는 몰라도 세속주의 전통을 파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뜻하는 라이시테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프랑스만큼 종교와 국가의 영역분리를 강조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라이시테는 중세 교회와 왕권의 대립과 종교전쟁, 프랑스 대혁명, 19세기 가톨리시즘과 공화주의적 반(反) 교권주의 간의 투쟁에 따른 결과물로, 현대 프랑스의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규율하는 강력한 원칙이다.
프랑스는 근대 이전까지 가톨릭 국가 전통이 매우 강했지만 '드레퓌스 사건'으로 온 나라가 격랑을 겪은 뒤 1905년 정교분리법을 제정해 현재의 세속주의 전통을 확립했다. 이 법에 따라 프랑스는 어떤 종교도 공식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어떤 종교에도 국가가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마크롱은 두 달 전에도 정교분리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당시 발언은 그러나 가톨릭이 아닌 이슬람에 방점이 찍혔었다.
마크롱은 2월 11일자 주르날 뒤 디망슈 인터뷰에서 올해 1분기 안으로 프랑스 내 이슬람교의 전반적인 종교제도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겠다면서 "어떤 선택지가 되든 목표는 라이시테(정교분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재발견하고 종교를 믿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발언은 정부가 이슬람교 종교 조직과 운영을 관할하는 법정 기관을 설립하고 이의 회계·감독을 투명하게 하는 방안을 강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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