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증평 모녀 사망…'아파트 절벽' 이웃사촌 옛말
이웃 주민 "숨진 아이 백일 때 떡 받았는데…이런 일 생길 줄이야"
수도계량기 검침분 3개월 연속 '0'인데…관리사무소 뒤늦게 확인
(증평=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숨진 지 최소한 두 달 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북 증평군 A씨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생활고와 빚 독촉에 시달리던 모녀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지자체는 물론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이웃 주민들도 두 달여동안 이들의 죽음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성냥갑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파트의 폐쇄적인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각박해진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파트간 벽에 막히는 바람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옛말이나 다름없게 됐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A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B(33)씨는 9일 "지난 1월부터 A씨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오랫동안 보이지 않고 고지서가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가족들이 멀리 여행을 간 줄만 알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A씨의 딸이 백일이었을 때 떡을 받은 적이 있는 데 그 이후 만난 적도 거의 없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면서 "뉴스를 보고 A씨 모녀의 죽음을 알았다.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숨진 모녀는 건강보험료는 물론 가스비를 수개월째 체납하고 아파트 관리비도 4개월 치를 내지 못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A씨 모녀가 숨진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올 1월 초 검침한 작년 12월 수도 사용량이 '0'인 것을 이상하게 여긴 관리사무소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망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 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매달 초 전기·수도 사용량을 검침하는 데 1월 검침한 작년 12월 사용량부터 3개월 연속 수도 사용량이 '0'으로 기록된 것을 보고 의아해 A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 아파트다 보니 장기 출장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 수도 사용량 '0'으로 검침되는 가구가 가끔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아파트 주민들은 자녀가 같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거나 같은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왕래가 없다"면서 "심지어 앞집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아파트에 5년째 사는 C씨도 "아파트가 워낙 폐쇄적인 공간이다 보니 이웃 간 왕래는 거의 없고 이웃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녀 사망 사건과 노인 고독사 등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 지역사회의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 시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정을 조기에 발굴하고 적절한 지원책을 펼쳐야만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준석 행동하는복지연합 사무국장은 "지역 단위별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빈곤선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지표를 결정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사무국장은 "지니 계수같은 것보다는 지역마다 상황이 판이한 빈곤선을 만들고 지방정부가 찾아가는 공적영역에 대한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인의 사회적 욕구가 다양해지고 사회적 수준도 높아진 만큼 빈곤의 개념을 물질적 빈곤에서 정신적 빈곤으로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극단적인 선택을 줄이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인구 10만 명당 26명에 달하는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명으로 줄이기 위한 '자살예방 행동계획'을 최근 수립했다.
지난 5년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7만명에 대한 경찰 수사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자살의 특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위험 신호를 인지해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도움을 받도록 연계해주는 '생명보호지킴이' 100만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40세부터는 10년마다 우울증 검사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실직자와 감정노동자, 경찰관, 소방관 등 자살 위험이 큰 직군에 대해서는 자살 예방교육을 강화한다.
y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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