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스마트' 변신한 예비군훈련…"게임하는 기분"
'과학화' 금곡예비군훈련대 체험…2023년까지 40곳으로 확대
전투력 향상 직결 과제…"소프트웨어 측면도 개선"
(남양주=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교전을 시작합니다."
교관의 날카로운 외침과 전투 효과음이 빗줄기를 뚫고 울려 퍼지자 시가지 교전 훈련이 시작됐다.
전투모에 파란색 스티커를 부착한 지긋한 나이의 '청군' 예비군들은 직전에 급조한 전술대로 2명씩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가건물 속으로 달려갔다. 어디선가 '여기가 아닌가'하는 중얼거림이 언뜻 들려왔다.
실제 상황도 아니니 '설렁설렁'하면 된다는 느긋함도 잠깐, 언제 내가 적 공격에 '사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진지해지면서 벽 뒤에 몸을 숨기는 걸음이 바빠졌다.
이윽고 건너편 건물 사이 언뜻 '황군' 예비군들이 보였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다 머리를 내민 상대를 겨냥해 레이저 장치가 부착된 소총으로 사격했고, 탄피가 튀고 화약 냄새가 나는 대신 어깨에 착용한 특수 장비가 '위잉'하고 세 번 울렸다.
건물 건너편에서는 '아 죽었다'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군은 예비군 창설 50주년 기념일(4월6일)을 앞두고 5일 오후 56사단 금곡 예비군훈련대에서 취재진을 대상으로 '과학화 예비군 훈련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금곡 예비군훈련대는 지난 2013년부터 예비군 훈련장 과학화 정책이 시범 적용되고 있다. 서울 6개구 14만명 훈련을 담당하는 훈련대는 3차에 걸쳐 100억여원을 투입해 각종 첨단 시설을 갖췄다.
육군은 실전적 훈련여건 보장을 통해 예비군의 전투력 향상을 도모하고자 훈련장 과학화 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어느덧 '시간낭비'의 상징이 되어버린 예비군 훈련의 내실화를 꾀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날 취재진이 체험한 훈련 시스템은 과거와는 천지차이였다. 열화상 카메라, 신분증 스캐너, 스마트워치, 태블릿PC,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 등 각종 장치를 활용해 기존 예비군 훈련의 비효율성을 해소한 모습이었다.
등록 절차의 경우 신분증을 제시하자 사진을 포함한 인적 정보가 패널에 곧바로 노출됐고, 참가자가 서명하자 본인 확인 절차가 순식간에 끝났다. 예비군 전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해 인명 관리나 위급상황 대응도 실시간으로 가능토록 했다.
영상모의사격 훈련과 실사격 훈련도 과거와 달랐다. 영상모의사격은 군자역과 영동대교를 상정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끊임 없이 쏟아지는 적들을 향해 사격해야 했는데, 마치 사격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실내에서 이뤄진 실사격 훈련의 경우 표적지가 자동 이동해 병사가 표적지를 목표 위치에 부착하느라 총구 앞을 지나는 위험한 장면을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육군 관계자는 "영상모의사격은 VR(가상현실)로 전환하려 한다. 각자가 작은 돔에 들어가 장비를 착용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개발 작업을 하고 있고 빠르면 내후년에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훈련의 압권은 역시나 시가지교전 훈련이었다. 가건물을 이동하며 형식적으로 페인트탄을 발사하는 것이 아닌, 고감도 센서 발사기와 감지기를 활용해 교전 상황을 경험하는 마일즈(MILES) 훈련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날 취재진 10명은 하나의 팀을 구성해 당일 훈련에 참가한 한 대학교 소속 예비군들과 승부를 벌였고, 예상과 같이 패배했다.
훈련 방식 자체는 실시간으로 사망자, 경상자, 부상자가 확인되고 명확히 승패를 결정짓는 형식이어서 예비군의 참여 동기를 유발하는데 충분해 보였다.
이날 현장에서 시가지 교전 프로그램을 마친 한 대학생 예비군은 "이런 방식의 훈련은 처음인데 확실히 집중도 되고 재미있는 것 같다"라며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훈련 방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자신의 생존 여부 등 진행 상황을 바로바로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은 단점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훈련에 대한 흥미도가 어느 정도나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락실이나 VR 게임 시설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과 훈련 시스템 간의 본질적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육군 관계자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훈련 교범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더욱 개선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먹은 6천원짜리 점심 도시락도 '예비군 식사'에 대한 편견에 비하면 훌륭한 수준이었다. 육군 관계자는 "일정한 인원이 지속적으로 식사를 하는 만큼 가격대를 어느 정도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처럼 '과학화'된 훈련시설은 금곡을 비롯해 전국에 4곳이 마련됐다. 육군은 오는 2023년까지 이와 같은 시설을 40곳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hapy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