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도파업 이틀째…노조·정부 강대강 대치(종합)
정부 "파업 강력하지만, 개혁의지 꺾이지 않는다"
노조 "철도노동자들 매우 잘 조직돼…정부, 귀 기울여야"
시민들, 평소보다 몇시간 일찍 나서거나 재택근무 등 '자구책'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철도노조가 대대적인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국철 개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맞서면서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철도노조는 국철 임직원의 종신 고용과 연봉 자동승급, 조기 퇴직, 가족 무료승차권 등의 혜택을 폐지한다는 정부방침에 반발해 4일(현지시간) 이틀째 총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정부의 양보가 없는 한 6월 28일까지 한 주에 이틀씩 이어진다.
철도파업으로 전날 TGV(고속철) 등 주요 철도노선들의 운행 스케줄이 대거 취소되면서 심각한 교통난이 빚어지자 프랑스 언론들은 '검은 화요일'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파업 이틀째인 4일에도 열차로 출퇴근과 통학을 하는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아침 출근 시간대에는 열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자동차 편으로 몰리면서 주요 도로들이 큰 정체를 빚었다. 출근 시간대 수도권 전역의 차량정체 구간이 총연장 350㎞로 평상시의 갑절 수준이라고 당국은 집계했다.
시민들은 평소보다 몇 시간 일찍 집을 나서거나 재택근무를 하고 카풀(차량 공유)을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철도파업이 장기화하면 프랑스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발달한 프랑스에서 열차 이용자는 하루 평균 4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철도가 주요 운송수단이다.
프랑스철도공사(SNCF)는 총파업 첫날인 3일 전체 직원의 33.9%가 파업에 참여했지만 둘째 날에는 참여율이 29.7%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양보는 없다는 입장이다.
프랑스 총리실 관계자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파업투쟁의 동력이 강력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대대적인 개혁 의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도 전날 오후 하원 대정부 질의에서 "국철의 현상유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면서 정부 안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재차 피력했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합의대로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철도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철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SNCF의 누적 부채는 최대 500억 유로(67조원 상당)에 이르는데 국철 임직원들의 '방만한 복지'에도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프랑스 정부의 생각이다.
SNCF 임직원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이 보장된다.
평생고용, 연봉자동승급, 조기퇴직과 그에 따른 연금혜택, 가족 무료승차권 등이 정부가 '수술대'에 올려놓은 대표적인 항목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런 것들이 내부 기득권층이 누려온 "특권들"이라면서 프랑스 경제의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프랑스 정부는 국철 임직원의 혜택 축소는 신입사원들부터 적용하고, 기존 13만 명의 근로자들은 현재 누리는 혜택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국철 개혁 용역보고서가 제시한 군소 지역 노선 폐지 방안도 정부 안에서는 빠졌다. 지역민들이 노선 폐지에 반발해 노조의 입장에 동조하면 정부가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철 개혁을 집권 2년 차의 첫 시험대로 여기고 총력전에 나섰다.
실업급여 등 노동시장 구조개편, 공무원 감축, 중등교육·대입제도 개편, 연금 개혁, 국회의원 정원축소와 특권 폐지 등 굵직한 국정과제를 동시에 추진하는 상황에서 철도노조 파업에 밀리면 다른 과제들도 추진동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부활절 휴가를 사저가 있는 노르망디 지방 르투케에서 보냈다. 거리의 한 시민이 파업에 굴복하지 말라고 하자 그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가볍게 응답해 정면돌파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1995년 철도노조가 승리한 총파업 때 만해도 SNCF는 프랑스 국민에게는 국가적 자부심이었지만, 지금은 파리 등 대도시의 노후한 철도시설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이 겹쳐지면서 과거보다 노조 의견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지 않은 것도 정부로서는 유리한 지점이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의 정치분석가 제롬 푸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SNCF는 건드릴 수 노조들의 성역이자, 전후 프랑스 사회모델의 상징이 됐다"면서 "현 국면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결정적인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노조로서도 명운이 걸려있다. 이번 파업은 좌파색채가 강한 프랑스 제2 상급노조인 노동총동맹(CGT)가 주도하고 있다.
CGT는 작년 프랑스 제1노조 지위를 온건성향의 민주노동총연맹(CFDT)에 넘겨줬지만, 여전히 SNCF의 다수 노조가 가입한 단체다.
CGT로서는 이미 노조의 권한을 크게 약화하고 기업의 해고 자유를 확대한 작년 노동법 개정에서 정부에 무기력하게 밀린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각오다.
필리프 마르티네즈 CGT 위원장은 3일 저녁 RTL 라디오에 출연해 "철도노동자들이 얼마나 잘 조직됐는지 오늘 파업에서 확인됐다"면서 "정부는 오늘 이 나라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노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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