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조사 못하고 인권센터 폐쇄…인권조례가 없다면 생길 일들
충남서 전국 첫 인권조례 폐지…9일 공포 예정
(홍성=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이 조례는 충청남도 도민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 실현에 이바지하기 위해 그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2012년 5월 제정된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충남인권조례) 제1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3일 해당 조례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재가결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일 충남도의 공포를 거쳐 인권조례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인권조례가 삭제되면 인권 관련 교육과 상담, 실태 조사를 하고 인권센터를 운영할 근거가 없어져 인권행정 수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인권침해 및 차별 사건 상담·조사와 구제 업무(제20조), 인권정책 기본계획 수립(제5조), 인권교육 시행(제7조)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인권센터 설치를 포함해 인권센터의 조직·운영·업무에 관한 제반 사항을 담은 제17∼27조까지의 조항이 모두 삭제됨에 따라 인권센터의 존립 근거가 사라진다.
조례는 지방자치단체 별로 운영하는 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구성, 인권영향평가 등 인권위의 업무까지 포함하고 있어 관련 분야 행정 전반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당 의원들이 문제 삼은 것은 '도지사는 도민 인권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전담 부서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례 제8조이다.
도지사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도민 인권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동성애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동성애 반대를 위해 도내 노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자 등 인권 취약계층에 대한 인권 보호 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당 주장대로 '성적 지향'이란 문구가 문제 된다면 삭제하고 수정안을 발의할 수 있음에도 폐지안을 낸 것은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충남인권위원회는 4일 성명을 내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동성애 옹호, 이슬람 조장'이라는 혐오세력과 만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야합했다"며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은 날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권을 진전시키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며 "헌법에 어긋난 충남도의회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며, 전국 인권기구 및 단체들과 연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정구 도 자치행정국장은 "인권조례를 없애겠다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에 인권 보장의 책무를 부여한 헌법과 관련 법률을 위반하겠다는 것"이라며 "지방자치법 제7조3항에 따라 20일 이내에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돼 있는 만큼 여러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충남인권조례는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자유선진당 송덕빈 의원과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동 발의해 제정됐다. 현재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6곳이 인권조례를 제정, 시행 중이다.
이번에 자유한국당 소속 충남도의원들이 스스로 만든 조례안을 폐지함에 따라 충남도는 인권조례를 없앤 첫 사례가 됐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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