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잠긴 러시아…시베리아 쇼핑몰 화재 희생자 '추모의 날'(종합)
신원 확인된 15명 장례식…당국 "현재까지 64명 사망, 76명 부상"
방화설 증언도 나와…참사 부른 쇼핑몰·관리당국 질타 여론 고조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 전역이 슬픔과 애도 분위기에 잠겼다.
28일(현지시간) 러시아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시베리아 케메로보 쇼핑몰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다. 이날로 예정됐던 모든 오락 문화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TV·라디오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도 중단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날 28일을 국민 추모의 날로 선포했다.
케메로보에선 이날 화재 참사 희생자 가운데 신원 확인 작업이 끝난 15명의 장례식이 열렸다.
재난당국인 비상사태부는 현재까지 사망자 27명의 신원 확인 작업이 완료됐다고 밝혔다.
사고 수습 본부는 지금까지 어린이 41명을 비롯, 64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부상자는 어린이 27명을 포함해 76명이라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14명은 여전히 입원해 입으며 62명은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케메로보 구역 법원은 이날 화재가 난 쇼핑몰 '겨울 체리' 대표 나데즈다 수드데녹에 대한 구속영장을 허가했다. 수드데독은 5월 25일까지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수드데녹과 함께 화재 당시 쇼핑몰 수동 화재 경보장치를 끈 경비회사 직원도 구속했다.
중대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가 사고 진상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화재 원인을 둘러싸고는 여전히 여러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연방수사위원회 위원장은 전날 푸틴 대통령 주재 대책 회의에서 가장 가능성이 큰 화재 원인으로 쇼핑몰 4층 어린이 놀이시설에서 발생한 전기 합선을 들면서 동시에 방화 가능성도 살피고 있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이날 방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다.
한 현지언론은 수사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4층 놀이시설 가운데 하나인 '건조 욕조'에서 방화로 인한 발화가 시작된 뒤 주변으로 불이 번졌다고 보도했다.
건조 욕조는 큰 플라스틱 통 안에 역시 플라스틱 재질의 작은 공들을 넣어두고 아이들이 안에서 놀도록 한 시설이다.
관계자는 건조 욕조에서 방화에 의한 발화가 시작돼 불길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진 그물과 실내 등반 시설 등으로 옮겨붙었고 곧이어 전선이 손상되면서 정전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화재 당시 어린이 놀이시설에서 오락 도우미로 일했던 한 남성은 12세쯤으로 보이는 청소년이 여러 차례 회전목마 시설에 불을 지르려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구속된 쇼핑몰 대표 수드데녹도 방화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조사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시점에 어린이 놀이시설 회전목마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이 큰 폭발음과 뒤이은 불기둥을 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非)러시아계 외모의 청소년들이 최근 한 달 동안 쇼핑몰에서 계속 소란을 피워 내쫓으려 했었다면서 사고 당일에도 이들이 4층 어린이 놀이시설에서 목격됐으며 이들이 방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현지 언론은 그러나 화재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희생자를 크게 키운 건 쇼핑몰 직원들의 실수와 무지, 태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사당국 조사 결과 화재 일주일 전부터 쇼핑몰의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지 않고 있었지만 수리하지 않았으며, 쇼핑몰을 지키던 사설 경비업체 직원은 사고 당일 통제실 기기에 화재 발생 신호가 들어왔음에도 수동 화재 경보 시스템을 꺼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4층 영화관과 놀이시설에 있던 방문객들은 유독성 연기가 실내에 가득 찰 무렵에야 화재 사실을 깨닫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또 수백 명의 관람객이 있었던 영화관 출입문과 건물 비상탈출구 문 등이 화재 당시 모두 잠겨 있었던 것도 피해를 재앙 수준으로 키웠다.
영화관 출입문은 젊은이들이 표를 사지 않고 몰래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관리자들이 잠근 것으로 보이며, 비상탈출구는 외부인의 건물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폐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쇼핑몰 직원들은 불이 확산하자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대피시키기는커녕 먼저 건물에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쇼핑몰 책임자 및 직원과 관리·감독을 맡은 당국의 무책임을 질타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유족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나아가 유사한 문제가 사고 쇼핑몰뿐 아니라 많은 러시아 도시의 공공시설에 똑같이 내재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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