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작가' 박장년 다시 보기…'실재와 환영의 경계' 展
성곡미술관서 개막…미술관, 매각설에 확인 거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7일 찾은 서울 광화문 성곡미술관에는 수십 장의 누런 천들이 걸려 있었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천들은 바람에 펄럭대는 것 같기도 하고, 잡아당기면 금방 허물어져 내릴 것 같기도 했다.
작가 박장년이 1970년대 중반부터 2009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수십 년간 그려온 마포(삼베) 작업들이다. 작가는 캔버스를 싼 마포 위에 마포를 그리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1974년부터 1년여 사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수의를 접하시면서 (마포 작업의) 영감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이날 전시장을 둘러본 장남 박윤석 씨 이야기다. 건축가인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부지런히 마포를 씌우고 잡아당기고 호치키스를 박던 모습을 기억했다.
"단독주택 2층에 화실이 있었거든요. 아버지와 어머니(화가 김미자)가 함께 작업하셨는데, 가라앉은 듯한 느낌의 아버지 그림보다 어머니 꽃그림이 인기가 많았어요."
초창기 작업에서는 캔버스의 마포와 작가가 붓으로 그린 마포가 별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에 가까워지면서 두 마포는 서로 구분되지 않고 섞여들기 시작한다. 작가는 바탕과 동일한 색조의 물감으로 음영만을 그려 넣어, 바탕에서 마포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 것 같은 효과를 끌어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이를 두고 "어디까지가 바탕의 천이고 어디까지가 환영으로서의 천인가를 쉽게 구분할 수 없게 한 그 독특의 묘법"이라고 지적했다. 극사실적 소재를 담고 있으면서도 개념 미술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22일부터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실재와 환영의 경계에서'에는 마포 작업을 비롯한 회화와 설치, 영상 90여 점이 나왔다. 생전에 미술 시장의 환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영역에 작업이 걸쳐 있다는 점에서 아주 드문 작가"(윤진섭 미술평론가)"의 화업을 다시 들여다보는 자리다.
아들 박씨도 "한때 아버지도 화려한 그림을 그리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한 그림을 20년, 30년씩 그리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한편 성곡미술관은 최근 외국계 투자기관에 매각됐으며 미술관을 포함한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설에 확인 불가 입장을 밝혔다.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은 이날 이수균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통해 "아직 아무것도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올해는 전시가 다 예정돼 있으며 미술관에 변화가 있으면 바로 알리겠다"고 밝혔다.
성곡미술관은 성곡미술문화재단에서 고(故) 김성곤 쌍용 창업주의 저택을 개조해 1995년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2007년 학예실장이던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 사건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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