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만 전 광주국군병원장 5·18 증언…"민간인도 치료했다"
김연균 당시 병원장, 광주국군통합병원 의료진 5·18 활동집에서 증언
"상무대에서 옮겨와 치료…시신 가매장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의사로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소속 따지고 그런 일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민간인도 치료)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국군통합병원장이었던 김연균 광주시의사회 고문은 27일 공개된 '5·18 의료활동 제2권'에서 당시 군인 신분으로 위험을 무릎 쓰고 민간인 부상자를 치료한 심경을 이같이 밝혔다.
김 고문은 군인 아닌 민간인을 치료한 사실을 5·18 이후 38년 만에 이 책을 통해 털어놨다.
당시 군 치료병원인 광주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는 민간인 321명, 군인 115명 등 모두 436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우리가 군인을 치료하게 돼 있어요. 군인 치료를 하지 민간인 치료를 하라는 말은 받은 일도 없고, 내가 단독으로 한 일이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월남에서 병원장을 했는데 그때는 베트콩도 다 치료를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총상이나 구타로 죽게 생겼는데, 진료진이 있는데, 해준 것이 잘못이냐고. 나를 조사해 감옥에 넣든지 해라'고 했다"고 5·18 이후 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증언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군법까지는 생각 안했어요. 제가 국군통합병원장이 아닙니까. 사령관에 육군 지역 사령관이니까. 계엄령이니까 제가 나선 거에요. (중략) 19일 보고를 하면서 '이런 (민간인) 환자가 있으면 저희가 돌볼 수 있으면 돌보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김 고문은 당시 치료한 민간인 환자들은 대부분 상무대에서 옮겨왔다고 밝혔다.
상무대에서 고문 등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을 통합병원으로 옮겨와 일부러 치료했다는 것이다.
그는 "(상무대에서 시민들이) 너무나 폭도가 되니까 병을 만들어 입원시켰다. 그것은 완전히 도와준 것이다. 왜냐하면 통합병원 군의관들이 주로 전대, 조대가 제일 많았다. 고향 사람이니까 친척을 알고 군의관 누구 알고 다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다 빼내고 도와주고 그런 것이다"고 밝혔다.
당시 치료한 군인들이 대부분 총상 환자들이었다며 "아군끼리 한 것이 압도적이었다"고 증언했다.
5·18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전두환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는 (중략) 누군가 희생을 해야하고 빨갱이도 돼야하고. (중략) 내 속으로는 '이것은 조작이다' (중략)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제기된 군 헬기 사격에 대해서는 "내가 본 환자 중에서는 (헬기 사격으로 인한 부상자는) 없었다"고 했다.
'통합병원 민간인 암매장설'은 "시체라고 하는 것은 못봤다"면서도 "그 사람(3공수 여단장)이 그렇게 미련할까. (중략) 우선 보기 싫으니까 상하기 전에 '가매장하라'했고, 당연히 파서 다른 데 옮겼어야 됐죠"라며 가매장 이후 시신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 고문은 "나이가 86세 되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진짜 이것(증언)만은 하고 죽어야지 했다. 그냥 죽어버리면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시의사회는 김 고문의 증언 등을 토대로 그동안 조명되지 않은 5·18 당시 광주국군통합병원 의료진 활동상을 담은 5·18 의료활동 제2권을 발간했다.
cbebo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