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소녀들이 무대에서 들려주는 적나라한 현대사회 이야기
극단 프랑코포니, 프랑스 희곡 '아홉 소녀들' 국내 초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프랑스어권 현대 희곡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온 극단 프랑코포니가 올해 봄 정기공연으로 프랑스 작가 상드린느 로쉬의 '아홉 소녀들'을 초연한다.
연극은 빨간 치마를 입은 아홉 명 소녀들의 이야기가 놀이 형식으로 진행된다. 잔디밭처럼 보이는 공간에 모인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사실인지, 상상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디선가 보고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억과 허구가 마구 뒤섞인 소녀들의 이야기는 '소녀들'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형적인 이미지를 배신한다. 이민자, 성폭력, 비만, 차별, 동성애, 죽음, 폭력 등 온갖 현대사회의 문제를 망라한 이야기들은 적나라하고 때로는 섬뜩하기까지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짧은 원피스를 입고 야밤에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이야기나 '아이가 없는 여자는 완전한 여자가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 등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 등과 연관지어 주목받고 있다. 아홉명 소녀 역할을 하는 배우 중 3명이 남성 배우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이에 대해 희곡을 번역·각색한 임혜경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는 22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작품은 1년 전 결정됐고 지난 겨울 연습을 시작했다"면서 "내용상 현 상황과 연결점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보편적이고 동시대적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 작품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상드린느 로쉬 역시 "이 작품은 흔히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페미니스트 텍스트가 아니다"라면서 "'여성 존재'를 통해 한 사회의 상태를 진단해보는 하나의 텍스트"라고 설명했다.
'아홉소녀들'은 '프랑코포니'(불어권)라는 이름처럼 프랑스어 희곡을 소개해 온 극단 프랑코포니가 창단 10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코포니는 20여 년간 한국 문학과 연극을 프랑스에 소개하는 번역작업을 해 온 임혜경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와 까띠 라뺑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교수가 함께 이끌고 있다. 2009년 연극 '고아 뮤즈들'을 계기로 창단돼 매년 한 편씩 공연을 올리고 있다. '아홉소녀들'은 까띠 라뺑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임혜경 교수는 "17∼19세기 작품보다는 동시대성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뭘까를 고려하며 작품을 찾는다"면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으면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너무 유럽적이거나 프랑스적이어서 그곳의 정치·사회·경제상이 드러나는 작품은 한국 관객이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동시대성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연은 22일부터 4월8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진행된다. 권기대, 김시영, 한철훈, 김진곤, 김혜영, 허은, 이지현, 김신록, 홍철희 출연. 작가 상드린느 로쉬는 주한프랑스문화원의 초청으로 방한해 관객과의 대화와 연극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석 3만원. ☎ 070-7664-8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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