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이 말한다…"제주4·3, 모두 알아야할 대한민국 역사"
40년 전 '순이삼촌' 발표해 4·3 논의 금기 깬 소설가 현기영
"나는 문학으로 4·3 원혼 달래는 무당…그 역할 충실히 할 것"
"4·3 역시 분단에서 연유…남과 북, 화해와 공생의 길로 가길"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던 제주 4·3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낸 작품 '순이 삼촌'.
이 작품을 쓴 소설가 현기영(77)은 제주의 아픔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으로 승화,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끌어낸 작가로 꼽힌다.
그가 4·3 70주년을 앞두고 여전히 아픔 속에 있는 '4·3'을 이야기했다.
◇ 문학으로 영혼을 달래는 '무당' 현기영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오백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중략) 당시 일주도로변에 있는 순이 삼촌네 밭처럼 옴팡진 밭 다섯 개에는 죽은 시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밭담에도, 지붕에도, 듬북눌에도, 먹구슬나무에도 어디에나 앉아 있던 까마귀들. 까마귀들만이 시체를 파먹은 게 아니었다. 마을 개들도 시체를 뜯어 먹고 다리 토막을 입에 물고 다녔다.」 (순이 삼촌 60∼61쪽)
제주4·3은 금기(禁忌)였다.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민간인 학살.
그러나 권력은 기나 긴 침묵을 희생자들에게 강요했다.
금기를 깬 것은 1978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소설 '순이 삼촌'이었다.
22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를 가진 현 작가는 "4·3을 이야기하지 않고선 문학적으로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겠다는 딜레마를 느꼈다"며 "4·3을 쓰고 싶었다기보다 의무감, 부채감이 무겁게 억눌렀다"고 '순이 삼촌'을 쓰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현 작가는 "(나를) 고문한 이유는 사상을 검증하는 것도 있었지만 더는 4·3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같았다. 그런 의미의 몽둥이찜질이었다"고 괴로운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국가보안법으로 묶어서 처벌하려면 4·3을 법정에서 들춰내야 하고, 그러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겠어요? 그게 싫었던 거죠. 그래서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매를 때려 내보냈는데 효과는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1년 남짓 술로 허송세월하며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낮부터 마신 술에 지쳐 쓰러진 그에게 '순이 삼촌'이 나타났다.
꿈속에서 환한 빛 속에 한 여인이 소복을 입고 나타나서는 '허구한 날 술이나 마시고 나자빠져 있느냐. 일어나서 글을 써라!'라고 호되게 꾸짖고는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 손을 잡고 내가 일어섰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그는 당시 바로 그 여인이 자신이 문학적으로 창조한 순이 삼촌이었음을 직감했다.
이후 현 작가는 마치 신(神) 내림처럼 운명적으로 4·3에 귀속될 수밖에 없었다.
"위령, 진혼…. 나는 문학으로 (억울하게 쓰러져간) 영혼을 달래는 무당입니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 "4·3은 해방공간 한반도 모순 집약된 사건"
"4·3은 제주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다. 해방공간 한반도가 겪었던 모순, 민족적 모순이 제주에서 집약된 사건이다."
현 작가는 "그런데도 버려져 있었고, 왜곡됐고, 역사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노기 띤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4·3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4·3이 역사에 자리매김하도록 우리가 직시해야만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며 온 국민이 자세히 알아야 하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화해와 상생, 진실규명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웃 또는 가족을 이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비극적 상황을 소설을 통해 드러내며 녹록지 않은 과제를 우리 사회에 이야기했다.
현 작가는 "증오란 것이 결국은 불화를 만들고, 더 나아가 분쟁·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며 "평화는 증오의 감정을 거두고 서로 화해하고 살려는 상생의 길"이라고 했다.
화해와 상생, 이를 위해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명명백백하게 가해자가 누구인지 가려지지 않았다. 절대적인 상명하복의 위계 속에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말단 군인과 경찰을 가해자라고 보지 않는다"며 4·3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도록 명령한 정권의 수뇌부와 이를 뒤에서 조종한 미국이 '가해자'라고 강조했다.
현 작가는 "이제는 화해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때"라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창기 정부의 과오를 대신해서 사과했듯이 경찰과 군이 해방공간에서 권력이란 이름으로 조직적으로 저질러졌던 과오를 다시 사과한다면 '화해와 상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설 연휴 첫날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를 하며 4·3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현 작가는 당시 못다 한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4·3은 물론 한국 사회의 모든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가 분단에서 연유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며 "분단은 언제나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 작가는 "남북 분단에서 초래된 갈등이 이제 화해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면서 "남과 북이 화해하고 공생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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