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희망퇴직…STX조선 자력생존·법정관리 갈림길
사측 생산직 75% 감원 계획 발표, 노조 "결사반대" 파업으로 대응
자력생존 자구안·노조확약서 제출시한 내달 9일…노사 "너무 가혹"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박정헌 기자 = 정부와 채권단이 밝힌 고강도 자구안 제출 시한이 3주 앞으로 닥치면서 STX조선해양(이하 STX조선)에 긴장감이 높아져 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일 중견조선소 처리방안을 발표하면서 중소조선업 생태계를 고려해 STX조선은 일단 자력생존 시키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또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전제를 달았다.
사측 자구안과 이에 동의하는 노조확약서 제출 시한은 한 달 뒤인 4월 9일로 못 박았다.
그런데 또다시 대규모 감원을 받아들여야하는 노조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회사는 한치 앞도 예측 못할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회사 희망퇴직 접수…"인건비 75% 줄이고, 후일을 도모하자"
20일 낮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STX조선 진해조선소는 휑했다.
호황일 때 직영과 협력업체 직원 8천여 명이 연간 30척 이상의 배를 만들던 100만㎡ 넓이의 야드는 조용했다.
조선소 특유의 쇠를 깎거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 중량물을 옮기거나 크레인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웽웽' 사이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작업자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도크, 육상 건조장, 안벽(진수를 한 배가 마무리 작업을 하는 곳)에는 건조중인 배가 1척도 없었다.
선박 블록용 철판을 잘라 가공하는 선각공장과 일부 블록 제작장에서만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한 직원은 "수주잔량 16척 중 지난해 4월 수주한 화학제품 운반선 5척만 건조 중이다"며 "무급휴직이 아닌 직영과 협력업체 직원 1천여 명 정도만 나와 있다"고 말했다.
조용한 야드 분위기와 반대로 회사 분위기는 긴박했다.
장윤근 STX조선 대표이사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인적 구조조정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계획이 또다시 불가피하다는 담화문을 전날 발표했다.
장 대표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회생계획안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지만 생산직 75%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줄여야 자금부족을 피하고 독자생존할 수 있다는 정부 컨설팅 결과가 나왔다"며 "회사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당장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과 아웃소싱을 진행하고 목표에 미달하면 권고사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지금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며 "회사가 존속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차 노조의 결단을 촉구했다.
대표이사 담화문에 이어 사측은 20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STX조선해양 직원은 1천300여 명으로 생산직은 690여 명이다.
생산직 75% 인건비 절감이란 목표를 맞추려면 생산직 500여 명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협력업체로 소속을 옮겨야 한다.
◇ 노조 "정규직 내보내고 비정규직 쓰려는 것"…파업 결의
생산직 690여명 전원이 조합원인 노조 입장은 인위적 감원에 완강하다.
STX조선 노조는 대표이사 담화문이 나오자마자 노보를 통해 "사측의 일방적 자구계획안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채권단 관리와 법정관리를 거치면서 계속 인원을 줄여왔고 임금도 꾸준히 삭감해왔는데 또 생산직 75%를 내보내겠다는 자구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다.
노조는 한창 때 3천600여 명에 달했던 직원 수가 지금은 1천300여 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임금도 50%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상황에서 몸집을 더 줄이겠다는 것은 결국 정규직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고 노조는 지적했다.
일거리가 없음에도 고용을 유지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닐뿐더러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조에도 역행한다고 노조는 항변했다.
고민철 STX조선 노조 지회장은 "자체적으로 조사해보니 구조조정 없이 현재 인원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런 의견을 사측에 제시했음에도 인적 구조조정 방침이 세워져 노조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STX조선 노조는 오는 22·23일 경고성 부분 파업을 결의했다.
이후에도 사측이 인적 구조조정안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2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전 노조원들에게 공지했다.
또 29일에는 노조원 전체가 산업은행 앞에서 구조조정이 포함된 자구안 철회를 요구하는 '상경 투쟁'을 할 계획이다.
◇ 희망퇴직만 5번째…노사 모두 "너무 가혹"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STX조선 직원들은 정부, 채권단 요구사항이 가혹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윤근 대표이사 조차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연명에 대한 의무사항이 너무나 가혹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STX조선은 경영난으로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간 2013년부터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지난해까지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했다.
그동안 4차례 희망퇴직을 했고 이번이 5번째다.
그 사이 인력은 3천600여 명 수준에서 1천300여 명 정도로 급감했다.
여름휴가비, 명절상여금 등이 없어져 임금도 줄었고 각종 복지혜택도 사라졌다.
많은 직원들은 STX조선을 또 법정관리로 넘길 수 있다고 밝힌 정부 방침이 수주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회사 정상화를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직원은 "또 법정관리에 가게 되면 회사가 청산되거나 인수합병 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주는 시점이 중요한데 정부가 법정관리를 꺼낸 후부터 수주 문의를 해오던 해외 선주들이 주춤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정부는 STX조선이 지난해 옵션으로 수주한 선박 6척에 대한 선수금 환급보증(RG)도 여태껏 해주지 않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수주한 배를 발주사에 넘기지 못할 때를 대비해 조선소가 선박건조비용으로 미리 받은 돈(선수금)을 금융기관이 대신 물어주겠다고 보증을 서는 것이다.
금융권이 RG 발급을 해주지 않으면 수주가 취소된다.
사측 관계자는 "정부가 RG발급을 볼모로 노사 모두에게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조선소를 제외하고 세계적 수준까지 갔던 국내 중형조선소론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은 STX조선이 자력생존이냐, 법정관리냐를 놓고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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