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발·그림 보며 음미하는 봄…"차와 선은 같은 맛이더라"
경운박물관서 다완 29점 전시…이도다완은 27일 하루만 나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고려 대문호 이규보는 "눈처럼 새하얀 차 반 사발로 번민과 근심을 씻었고" 나아가 "차 한 사발로 참선을 시작했다"고 했다.
생활 상식을 정리한 '문자유집'에는 차와 관련된 단어들이 나와 있고, 정조의 외동딸 숙선옹주 또한 "한가로운 가운데 그윽한 향이 있어 시를 읽고 또 차를 마셨다"고 했다.
우리 선조들이 일상에서 차 문화를 즐겼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차 문화를 옛 사발과 그림을 곁들여 음미하는 전시가 서울 강남구 개포2동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서 열린다.
23일 개막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전은 고려와 조선의 다완 29점과 다실에 어울리는 전통 서화 10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경기여고 동창회인 경운회가 운영하는 경운박물관의 첫 외부 기획전으로, 고미술 감정가인 이동천 씨가 기획을 맡았다.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일본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은 조선 사발인 이도다완 중 한 점이다.
16세기 당시 일본 지배층 인사들은 이도다완을 손에 넣으려 애썼다.
대마도 연간 쌀 수확량이 2만 석이던 당시에 이도다완 가격은 최소 1만석, 최상품은 5만 석의 쌀과 맞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선일미' 출품작은 노르스름하면서도 살결과 비슷한 빛을 띤, 입지름 14cm에 높이 8cm인 사발이다.
일본 최고 다인(茶人)인 센 리큐의 15대손인 센 겐시쓰 대종장으로부터 5년 전 진품으로 감정받은 작품이다.
이도다완의 특징인 굽 언저리의 몽글몽글한 '매화피', '메'라고 불리는 포개구운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위원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16세기 조선 이도다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서 "사발 안쪽 바닥의 포개구이 흔적은 위조하기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개인 소장자가 어렵게 대여를 결정했다는 이 이도다완은 27일 하루만 일반에 공개된다.
이도다완뿐 아니라 녹갈색 유약을 안쪽까지 바른 10세기 고려녹청자 해무리굽완을 비롯해 희귀한 다완들도 여러 점 나온다.
고려 때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연잎 모양의 다완 뚜껑인 '은하'를 현대의 은세공 장인이 재현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한반도와 중국의 차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려, 북송 휘종 때 무덤(백사 제2호 송묘)의 묘실벽화에 그려진 '은하'를 근거로 했다.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김정희가 생의 마지막 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서찰', 이하응이 말년에 남긴 난 그림인 유란' 등 전통 서화다.
이 위원이 1350년께 그려진 유일한 고려 수묵화라고 추정했던 '독화로사도'도 다음 달 19일 하루만 전시된다. '독화로사도'의 공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대표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의 딸이기도 한 장경수 관장은 '다선일미'를 두고 "세상사가 복잡한 때일수록 차의 향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무료인 전시는 4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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