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가는 남한 예술단…대중음악과 클래식의 향연 될 듯
실무회담서 세부계획 확정 "격을 유지하되 북측 정서 고려해야"
공연장으로 봉화예술극장·동평양대극장 등 5~6곳 물망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화해 무드 속에 10여년만에 평양에서 열리는 우리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공연은 다음 달 말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행사지만, 숱한 화제를 낳은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지난달 방남 공연에 대한 답방 행사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 같은 행사 성격을 고려해 평양 공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주 초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실무회담에서 공연 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공연 시기를 4월 초로 잡고 추진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장소, 예술단 구성, 공연 프로그램 등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라고 18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대중음악과 클래식이 중심이 되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열린음악회'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남북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과거 방북 공연 때도 이 같은 모습이 많이 연출됐다.
남한 예술단이나 예술인의 방북 공연은 분단 후 남북 문화예술 교류의 물꼬를 튼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과 함께 시작됐다.
이후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 1998년 리틀엔젤스 공연과 윤이상통일음악회, 1999년 평화친선음악회와 민족통일음악회, 2001년과 2002년 김연자 단독공연, 2002년 남북교향악 연주회와 MBC 평양특별공연, 2003년 통일음악회, 2005년 조용필 단독 콘서트까지 평양에서만 10차례가 훨씬 넘는 공연이 열렸다.
공연 내용을 살펴보면 정통 클래식이나 국악 위주의 공연도 있었으나, 대중음악에 클래식을 곁들이거나 대중음악에 국한된 공연이 더 많았다.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예술인도 김연자, 윤도현, 조용필 등 주로 대중가수였다.
1985년 첫 방북 공연 때부터 김정구, 김희갑, 하춘화 등 당시의 인기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현대무용, 민속무용, 민요합창, 가곡, 코미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는 국악 공연, 1998년 리틀엔젤스 공연과 윤이상통일음학회는 클래식과 국악 혼합 공연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그 뒤로는 대중음악 공연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1999년 평화친선음악회에는 패티김, 태진아, 최진희, 설운도 등 중견 가수와 젝스키스, 핑클 등 아이돌그룹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2002년 KBS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이 함께한 정통 클래식 무대가 한 차례 마련되기도 했으나, 나머지 공연들은 대중음악 위주로 꾸며졌다.
2002년 MBC 평양 특별공연에는 이미자, 최진희, 윤도현밴드, 테너 임웅균 등이 참여했으며, 2003년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에는 조영남, 이선희, 설운도, 신화, 베이비복스와 바리톤 김동규 등이 출연했다.
이번 공연도 과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공연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클래식에 비중을 둔다면 정통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연주가 주축이 되고 북한에서 인지도가 있는 대중가수 몇명이 가세하는 무대가 연출될 수 있다.
반면 대중음악 중심의 무대가 된다면 중견 가수부터 아이돌그룹까지 대중가수들이 폭넓게 참여해 분위기를 이끄는 가운데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고 일부 성악가나 국악인이 무대를 다채롭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번 공연이 지난달 강릉과 서울에서 있었던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대한 답례 행사라는 점도 공연 내용을 짐작하는 데 단서가 될 수 있다.
140여명 규모의 삼지연관현악단은 80명의 오케스트라와 가수, 합창단원으로 구성돼 남북에 친숙한 대중가요들에 클래식 명곡을 더해 총 40여 곡을 부르고 연주했다.
지난달 금강산에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앞서 열리려다 무산된 남북 합동문화행사에는 보아, 이적, 정인, 인디밴드 등 젊은 대중가수들과 피아니스트 손열음, 국악신동 유태평양 등이 참여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평양 공연의 사전 준비를 맡은 정부 실무팀은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선택 가능한 계획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정부 실무팀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KBS교향악단 등에 4월 초 평양 공연 참여 가부를 타진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상태다. 아울러 이름 있는 대중가수들에게도 소속사를 통해 일정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안은 북한의 입장을 반영해 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계 한 관계자는 "대략의 윤곽은 나온 것 같지만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은 것 같다"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행사라는 성격에 맞게 격을 유지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현재 북측의 정서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공연 계획을 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연 장소도 관심사다. 일단 과거 방북 공연이 열렸던 대여섯 곳의 평양 시내 공연시설들이 물망에 오른다.
방북 공연이 가장 잦았던 곳은 평양 서성구역 와산동에 위치한 봉화예술극장이다. 1998년 리틀엔젤스 공연을 비롯해 1999년 평화친선음악회와 민족통일음악회, 2002년 남북교향악 연주회 등이 여기서 열렸다. 최고급 자재와 설비로 건축된 봉화예술극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히 아꼈던 공연장으로 2천석 규모 대극장과 800석의 소극장이 있다.
2천200석의 평양대극장에선 1985년 첫 방북 공연이 열렸으며, 1천500석의 동평양대극장은 2002년 이미자, 윤도현밴드가 참여했던 MBC평양특별공연과 2008년 뉴욕필하모닉 공연이 개최됐다.
2003년 통일음악회와 2005년 조용필 단독 콘서트가 열린 류경정주영체육관은 1만2천명이 관람할 수 있다.
이밖에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열린 6천석 규모의 4·25문화회관, 1998년 윤이상통일음악회가 열린 700여석 규모 모란봉극장 등이 있다.
남북 실무회담을 거쳐 결정될 이번 방북 공연의 내용과 공연단의 규모에 맞춰 공연장도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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