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새 사라진 게 성냥개비만은 아냐…영화 '영웅본색 4'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카이(왕카이 분)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밀수조직의 핵심 인물이다. 그의 곁에는 고락을 함께하며 친동생보다 더 진한 우애를 나누는 마크(왕다루)가 있다.
친동생 차오(마톈위)는 경찰이 돼 마약밀수 사건을 수사하다가 주도자가 형 카이인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조직 내 세력다툼 끝에 음모에 걸려든 카이는 교도소에 가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마저 자객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 마크는 카이 대신 복수를 하기 위해 적진에 홀로 뛰어들었다가 한쪽 다리에 치명상을 입는다.
세 인물의 관계도만 보더라도 '영웅본색'을 빼닮았다. '영웅본색 4'(원제 '영웅본색 2018')는 홍콩 누아르의 명작으로 꼽히는 우위썬 감독의 '영웅본색'(1986)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카이가 룽티, 마크와 차오는 각각 저우룬파와 장궈룽이다.
'영웅본색'은 죽은 저우룬파의 쌍둥이 동생을 등장시키거나('영웅본색 2'), 저우룬파의 전사(前史)를 다룬('영웅본색 3') 속편이 나온 바 있다. '영웅본색 4'는 원작의 캐릭터를 조금 변형하고, 무대를 홍콩에서 칭다오로 옮겼다. 전편들보다는 한국으로 배경을 바꾼 송해성 감독의 리메이크작 '무적자'에 가깝다.
줄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작을 따라간다. 카이가 총격전 끝에 손목에 스스로 수갑을 채우는 엔딩까지 수많은 장면이 원작에 대한 오마주로 채워졌다. 유명한 '풍림각 총격전'도 빠지지 않는다. 성냥개비를 입술에 문 저우룬파의 액자 사진, 장궈룽의 얼굴로 장식된 LP판 앨범 표지는 원작의 영웅들에 대한 헌사로 읽힌다.
마크는 롱코트에 선글라스 대신 캐주얼한 야상 점퍼를 입고, 성냥개비 아닌 막대사탕을 문다. 달라진 건 마크의 외모만이 아니다. 차량 추격전 등 몇몇 액션신에서는 요즘 할리우드 스타일의 경쾌함도 느껴진다. 헤비메탈이 군데군데 배경음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원작의 비장미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슬로모션을 되도록 자제했기 때문인지, 액션신은 슬프기보다 서바이벌 게임 같은 느낌이 난다. 배우들이 저우룬파·장궈룽의 카리스마와 눈빛 연기를 따라가지 못한 탓도 있다.
원작 특유의 분위기에는 중국 본토 반환을 앞둔 홍콩의 불안감이 한몫했다. 액션은 허황됐지만 어둡고 처절한 분위기는 당시 현실을 반영했다. 하지만 고속성장을 외치는 자본주의 중국의 대도시 칭다오엔 감상적 누아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영화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요즘 세상엔 돈 많은 사람이 영웅이야."
'영웅본색'의 세례를 받은 요즘 누아르 영화 속 범죄조직은 자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이미 현실 적응을 마쳤다. 세 남자는 여전히 피 끓는 의리가 최고의 가치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관객은 자신의 추억 속에서 의리라는 낡은 가치보다는 원작 '영웅본색'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된다. 원작의 주제곡 '당년정'이 여러 버전으로 반복해 나온다. 심지어 버스킹하는 길거리 뮤지션도 '당년정'을 연주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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