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동시다발 노조압박…40년 이어진 노사정 균형 '균열'
노조·사용자단체가 분점했던 직업훈련기금 관리권 정부로 이관키로
국철개혁·공무원감축 등 노조-정부 대치 전선 다수 형성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막강한 프랑스 노조들을 상대로 이번에는 직업훈련기금을 놓고 '2차전'을 개시했다.
작년 노조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시장 유연화 구상을 관철한 마크롱은 이번에는 노조가 누려온 직업훈련기금 관리권을 정부가 가져가겠다고 선언, 노조와 또 한 번의 일전을 예고했다.
프랑스 노동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직업훈련 기금의 개편 방안을 발표한 뒤 의견 수렴 작업을 진행 중이다.
노동자 개인별로 직업훈련계좌를 개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유롭게 필요한 직업훈련 과목을 결제해 수강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비숙련 노동자에게 최장 10년간 연 800유로를, 숙련노동자에게는 연 500유로를 교육훈련비용으로 지원한다.
프랑스 노동자들의 직업훈련 기금 규모는 320억 유로(42조원 상당)에 달하지만, 기업들은 숙련 근로자를 찾기 어렵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프랑스 기업들은 총임금의 1.68%를 이 기금에 출연하며, 정부도 매년 거액을 쏟아붓고 있다.
노조들은 이런 정부 구상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상급 노동단체와 사용자 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해온 직업훈련 기금의 관리 주체를 정부가 가져가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노동단체와 사용자 단체가 막대한 기금을 관리하면서 불투명한 회계감독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면서 '정부의 직접 관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전후(戰後) 프랑스 사회복지체계의 주요 축이었던 노조의 역할을 축소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프랑스 노조들은 단순히 노동자 권익을 위한 단체를 넘어 주요 노동사회 정책의 일부를 대리하는, 반(半)헌법적인 위상을 누려왔다. 이를 기득권이자 비효율의 온상으로 규정해 혁파하겠다는 것이 마크롱의 생각이다.
2차대전 종전 후 출범한 제5공화국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된 노·사·정의 균형에 균열을 내 정부의 우위를 확고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개별 사업장에서 노조의 근로조건 협상권을 줄이고 사용자의 해고권한을 늘려주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관철한 바 있다.
마크롱의 노조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은 대선 후보 시절 온건 성향 제1 노조인 민주노동총동맹(CFDT)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으로 여실히 파악된다. 그는 당시 "사회적 파트너들에게 법을 만들고 정책을 집행하도록 허용했지만, 그건 그들의 역할이 아니다. 노조들은 그 일을 잘 못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직업훈련 기금 외에도 정부와 노조가 정면 대치하는 현안은 수두룩하다.
정부의 공무원 12만 명 감축 구상에 공무원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개편에는 교사 노조가 반대하고 있다. 국영철도기업(SNCF) 직원들의 복지혜택을 대폭 줄이는 방안에는 철도노조가 강력히 반발하며 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오는 22일 대규모 동맹파업과 거리 집회로 정부의 동시다발적인 노동계 개편 시도에 저항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프랑스 노조들의 저항 동력이 전 정부들에서처럼 거세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초 마크롱 대통령은 직업훈련기금처럼 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공동관리해온 실업보험의 관리 주체도 정부가 가져오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노조의 반발을 고려해 이를 정부 방안에서 제외했다.
또 정부가 개별 사업장에서의 근로시간과 임금 등 근로조건 결정권을 오히려 노조와 사용자 쪽에 더 개방한 것 역시 노조의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마크롱 정부 출범 후 일제히 고용과 실물경제 지표가 개선되는 흐름도 노조들로서는 투쟁의 악재다.
마크롱 정부는 이외에도 올해 실업급여 개편, 37개에 달하는 연금체계 개편 등 하나같이 전 정부들이 추진하다가 거센 반발에 직면해 좌초된 과제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압박 드라이브에 프랑스 노동계가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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