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트럼프 대통령, '보복관세 악순환' 우려 새겨듣기를
(서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외국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 부과 방침을 선언하자 유럽과 중국 등 주요 교역국들이 즉각 보복관세 등을 고려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미국산 철강·농산물은 물론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드슨, 위스키 버번, 청바지 리바이스 등 미국의 상징 브랜드에 대한 보복관세 검토에 들어갔다. 중국도 대두(콩)·수수 같은 미국산 농작물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이오와주와 인디애나주 등에 많은 트럼프 지지 백인 농민층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EU·중국의 전면적 통상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EU로부터 보복관세 움직임이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보복관세만큼 유럽산 수입품에도 보복관세를 매기는 '호혜세'(reciprocal tax) 도입 등 추가 수입 규제조치를 예고하며 맞불을 놨다.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BMW·폴크스바겐·아우디 등 유럽 브랜드를 겨냥한 조치란 분석이다. 양측의 강경 대치는 철강·자동차·농산물·주류·의류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대서양 통상전쟁'의 서막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도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대응책을 마련 중이고, 미국의 동맹국 일본도 조심스레 대응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의 '통상 폭주'가 멈추지 않을 경우 국가 간 보복과 보복이 악순환 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서 어렵게 상승 흐름을 탄 세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 우려된다.
트럼프의 관세 방침을 놓고 미국 내 저명 학자들과 유력 언론은 비판 목소리를 잇달아 내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방송에서 "지금이 대공황 당시 발생했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대공황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러가 언급한 대공황 때 사례는 1930년 미국이 제정한 '스무트-홀리법'에 따른 파장을 말한다. 1929년 뉴욕증시가 폭락하자 이듬해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통한 자국 산업경쟁력 강화 대신 수입품에 59%의 관세를 매기는 인기영합 정책을 택했다. 이에 맞서 영국·프랑스 등 유럽국가들도 관세를 올리는 바람에 전 세계 교역량이 크게 줄고 공황이 세계로 번지며 장기화하는 사태를 맞았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CNN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함과 무지로 인해 미국 일부 철강업체들이 단기적으로 약간의 수혜를 입을 수는 있겠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 학자들과 비슷한 우려를 내놨다.
세계 각국은 대공황의 악몽에서 벗어난 뒤 1947년 '관세·무역 일반협정'(GATT)을 출범시켰고, 1995년에 WTO로 대체해 오늘날까지 자유무역 기조를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산업 보호와 선거 때 지지층 결집이란 눈앞의 이익이 급급해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할 경우,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2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국산 등 수입 철강 제품 관세를 8%에서 30%로 올렸다가 자국 내 철강소비업종에서 일자리 20만 개가 사라지는 역풍을 맞았다. 이어서 상대국의 보복관세마저 당하자 결국 21개월 만에 관세 인상을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보복관세의 악순환이 이어지면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더 가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겨들을 만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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