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발의 차로 '강화된 안전진단' 적용…희비 갈린 재건축 단지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연정 기자 = 강화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5일부터 시행되면서 이번주에 안전진단 용역계약을 체결하려던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일부 단지들은 시행 직전 용역계약을 체결해 가까스로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 적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강화된 안전진단을 적용받게 된 아파트 단지들은 매수세가 끊기며 거래가 '올스톱'된 상태다.
◇ 용역계약 체결 '속도전' 벌였지만 상당수 실패
5일 업계와 각 구청에 따르면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를 피하기 위해 고시일 전에 정밀 안전진단 용역계약을 체결하려고 '속도전'을 벌여온 재건축 단지 상당수가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용역 입찰 개찰일인 6일에 용역계약까지 끝낸다는 계획이었으나 불과 하루 차이로 강화된 새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6일 업체와 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예정대로 계약할 지에 대해 아직 이야기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동구 명일동의 신동아 아파트, 삼익그린2차, 고덕주공9단지 역시 이번 주부터 최대한 서둘러 용역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강화된 새 기준을 피하지 못했다.
구청의 현장 실사(예비안전진단)를 앞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14단지 역시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14개 단지에서 현지조사 신청을 한 상태로 내일모레(7일)부터 현지조사를 나갈 예정"이라며 "현지조사가 끝나고 정밀안전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민들에게 용역비 납부 요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용역비를 납부하면 정밀안전진단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주민들이 '강화된 기준에 의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용역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진행이 중단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강화된 안전기준이 적용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용역계약을 체결해 이전 기준을 적용받는 단지들도 10여 곳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지는 일정을 서둘러 지난 2일 용역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끝마쳐 안도하는 분위기다.
강동구 명일동 현대아파트, 강동구 상일동 상일우성타운 아파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우성2차 아파트 등은 지난 2일 용역 업체와 계약까지 완료해 이전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희비가 엇갈린 경우도 있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광장아파트의 경우는 3~11동은 지난 2일 안전진단기관과 계약을 체결했으나 길 하나를 사이에 둔 1~2동은 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는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일대 역시 상계주공5단지만 지난달 22일 정밀안전진단 용역계약 체결을 마쳐 기존 계획대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지만, 다른 아파트들은 모두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을 적용받는다.
용역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가 간발의 차로 강화된 새 기준을 적용받게 된 단지들은 안전진단업체와 계약을 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재건축 단지의 한 주민은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려면 억대의 비용이 드는데, 비용을 걷어서 추진하다 안전진단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안전진단을 예정대로 추진할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더라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용역계약이 취소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단지 주민들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양천발전시민연대 관계자는 "안전진단 강화 정책이 사유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으므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구재건축공동대책위원회 최재형 위원장은 "삼익그린2차 아파트 등 일부는 용역계약비를 지불하려고 2억5천만 원이 넘는 돈도 모아놓은 상태인데 행정예고를 20일에서 10일로 당긴 것도 모자라 이미 현장 실사를 통해 예비안전진단을 끝낸 곳까지 강화되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목동·송파 등 매수세 '뚝'…양도세 회피 급매도 안팔려
강화되는 안전진단을 적용받게 된 아파트 단지들은 일단 매수세가 끊겼다. 당장 매물이 쏟아지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거래가 안 된다.
목동신시가지 3단지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안전진단 강화로 재건축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지만, 어차피 지금 시작해도 10년 이상은 걸릴 단지였다"며 "실거주자가 절반 이상이어서 아직 매물이나 가격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목동 7단지의 한 중개업소 사장도 "이곳은 안전진단 논의도 없었다가 오히려 정부가 갑작스레 안전진단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주민들이 덩달아 일정을 서둘렀을 뿐 달라지는 건 없다"며 "아직 지구단위계획도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안전진단이 늦어진다고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매수문의가 급감하면서 양도소득세 회피를 목적으로 시세보다 5천만 원 가량 싸게 내놓은 급매물도 팔리지 않고 있어 다주택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3월 말까지 잔금을 치러야 하는 양도세 중과 회피 매물이 단지별로 한 두 개 나와 있는데 안전진단 악재가 터지면서 거래가 안 된다"며 "꼭 팔아야 하는 사람은 가격을 좀 더 내리고 나머지는 그냥 보유하는 쪽으로 선회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목동 12단지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안전진단 시행 첫날이라 아직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거래 동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일부 투자자들이 내놓은 실망 매물이 나올 것"이라며 "가격도 2천만∼3천만 원 정도는 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6일 안전진단 용역 업체와의 계약을 준비 중이었던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분위기다.
잠실동의 중개업소 사장은 "하루 차이로 정밀안전진단 시행이 어렵게 돼 주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며 "당장 매물이나 가격에 큰 변화는 없는데 며칠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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