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폭로전 넘어서려면…구조적 성차별로 인식해야"
"수사와 별개로 전담기구 필요"…여성단체연합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한국의 이 뜨거운 '미투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연쇄 폭로전을 넘어서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성폭력을 성별권력 관계의 문제, 구조적 성차별의 단면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라운지에서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라는 이름으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서 실질적 성차별 해소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첫 발제자로 나선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을 사회적 변혁운동으로 보고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구조적 성차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를 의미한다"며 "가해자 개인의 도덕적 흠결 문제로 축소하는 악마화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위장된 안도감을 제공하고 문제의 일시적 봉합을 꾀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수한 피해자의 문제로 축소해 사생활을 캐고 신상털이를 하며 인격권을 무참히 짓밟는 행동은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심화시킨다"며 "적반하장식 책임전가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가장 오래된 적폐가 성차별적 구조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분석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스스로를 피해자의 틀 안에 가두기보다 그 경험을 사회구조와 연결지을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에는 관련 법제도 개선을 요청하면서도 시민사회의 '공적인 압력'을 강조했다.
여러 경로로 폭로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들을 한데 모아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희주 영화감독은 "이번에 알려진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들이 커다란 문화권력을 수십 년간 행사해온 유명인이고, 집단적 묵인과 방조, 협력이 연쇄적 성범죄를 가능하게 했으므로 수사기관과 별개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며 "조사결과를 기반으로 정책과 제도의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모델로 삼아 문화체육관광부에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건을 심층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면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사건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처벌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응체계를 주문했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특정 부처 담당자가 일을 처리하다 보니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진정사건은 2012년 249건에서 2016년 556건으로 늘었다. 반면 고용부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지도점검한 사업장은 같은 기간 1천132곳에서 535곳으로 줄었다. 적발된 사업장도 480곳에서 177곳으로 감소했다.
김 국장은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을 문제제기하면 명예훼손이 피해자를 협박하고 사건을 무마하는 데 악용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는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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