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단일팀 조수지, 본업은 공격수·부업은 남북한 통역사
"단일팀 여정 마쳐 시원섭섭…단일팀 통해 대표팀 더 단단해졌다"
(강릉=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공격수인 조수지(24)는 비공식 직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감독 통역사다.
2014년 9월 새러 머리(30·캐나다) 감독이 부임한 뒤 조수지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이유로 감독의 입이 됐다.
지난달 25일부터 북한 선수 12명이 들어와 남북단일팀이 구성되면서 조수지의 통역 일은 몇 배 더 힘들어졌다.
외래어 대신 고유 말을 만들어 써온 북한과 스포츠 용어를 원어 가깝게 받아들인 한국의 용어가 완전히 달라서다.
지난 24일 강원도 강릉의 올림픽 파크 내 코리아 하우스에 만난 조수지는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머리 감독님이 '파워 플레이(상대 선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에서 프레셔(pressure)를 많이 줘야 해'라고 하면 저는 '파워 플레이 상황에서는 상대 디펜스에 프레셔를 더 주래요'라고 풀어줘요. 그러면 우리 선수들은 다 알아들어요. 그런데 북한 친구들은 '뭐라고 하는 겁니까'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북한 선수들을 위해 또 통역하는 거예요."
'파워 플레이'를 수적 우세 상황으로, '디펜스'를 방어수로, '프레셔'를 압박으로 하나하나 풀어서 전달해야 했다.
아이스하키의 기본적인 용어 중 하나인 '덤프(공격 지역으로 퍽을 처넣는 것)'도 북한 선수들에게는 생소했다. 다행히 '퍽'은 북한에서도 '퍽'이었다.
조수지는 "북한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제가 계속 버벅거리고, 그러는 제가 우리 선수들에게도 웃긴 거죠. 그렇게 서로 많이 웃었다. 북한 친구들이 처음 왔을 때는 재미있는 일이 진짜 많았다"고 전했다.
한민족으로 같은 말을 쓰는 남북 선수들이 용어가 통일이 안 돼 어려움을 겪었던 일화는 해외 취재진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대목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단일팀에는 랜디 희수 그리핀, 박윤정(마리사 브랜트), 박은정(캐롤라인 박), 임대넬, 이진규(그레이스 리) 등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선수도 여럿이다.
조수지는 영어를 남한 말과 북한 말로 두 번 통역해주고, 캐나다·미국 출신 선수들과 남북 선수들이 잘 어울리도록 가교 구실까지 해야 했다.
단일팀에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출전 시간이 극히 적었다. 전 경기에 출전하긴 했지만, 출전 시간은 경기당 평균 4분 59초였다.
많이 뛰는 선수는 경기당 20분 안팎, 적게 뛰는 선수도 10분 안팎을 뛰는 것에 비하면 조수지의 출전 시간은 적어도 너무 적었다.
개인적으로는 실망이 컸다. 조수지는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2 그룹 A 대회 5경기에서 2골 3어시스트로 팀 내 포인트 부문 공동 2위이자 대회 공동 9위에 올랐다.
당시 대회에서 1∼2라인 공격수로 활약하며 자신감을 얻었던 조수지는 그러나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5경기 내내 4라인에 배치돼 좀처럼 빙판을 밟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조수지는 대회를 마친 소감을 묻자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팀으로 보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저보다 출전 시간을 많이 받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 원하는 만큼 못 얻었다고 해서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며 "다른 감정은 없다. 우리 팀이 최대한으로 잘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 신경 썼던 것 같다"고 했다.
돌아보면 힘겨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급작스럽게 단일팀이 구성되면서 올림픽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우리 선수들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다.
캐나다에 있다가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소식에 한국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조수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북측 친구들이 오는 걸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는 처지가 되니 무척 힘들었다"며 "다행히 지금은 좋게좋게 마무리는 됐지만 잘 되기까지의 그 전 단계가 우리에게는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여자 대표팀은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 B(3부리그)에 출격한다. 지난해 4부리그에서 전승 우승을 거둬 3부리그 승격을 이뤄낸 한국은 이번에는 2부리그 승격에 도전한다.
조수지는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뒀고, 그 대회가 내게는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며 "이번 대회에서도 우리 팀이 새로운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 단일팀을 통해 우리 대표팀이 더 단합되고 더 뭉쳐진 것 같아서 더더욱 좋은 성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차기 대회인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관해 묻자 "(자력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은 뒤 곧 태도를 바꿔 "꼭 나가야죠"라고 힘차게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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