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한국인 정체성 찾기…논리보다 문학으로 풀어봤죠"
일제시대 작가 김사량 다룬 장편소설 '다시, 빛 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학술서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을 내고 '국민의 탄생'을 쓰려고 하면서 일제시대 국민, 민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연구해 왔는데, 답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논리로 따지면 이념적 장벽에 부딪히니 상상력의 공간에서 해결하고픈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가온 인물이 일제시대 작가 김사량이었죠."
송호근(62)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지난해 4월 첫 장편소설 '강화도'를 내 소설가로 데뷔한 뒤 1년도 채 안 돼 두 번째 장편소설 '다시, 빛 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나남)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온몸으로 굴곡의 역사를 통과한 작가 김사량(金史良, 1914~1950)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
평양에서 태어난 김사량은 1931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반일 투쟁으로 퇴학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佐賀)고교와 도쿄제국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25세에 쓴 소설 '빛 속으로'가 일본 아쿠타가와 문학상 후보에 올라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지목했지만, '반도인'이란 이유로 수상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황군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됐다가 탈출해 조선의용군 선전대에 가담했고 광복 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종군작가로 참전했다. 당시 원주에 머물다 1950년 말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망에 관해 확인된 내용은 없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빛 속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상실 상황을 쓴 작품입니다. 빛이라는 것은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의 관심을 그대로 몸과 정신에 구현하고 있는 사람이죠. 당시 1940∼45년에는 조선에서도 조선어가 사라져버렸으니 거의 절망, 암흑 상태였어요. 절망 속에서 빛을 찾는 거였죠. 그 심정을 그대로 작품으로, 소설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 교수는 소설을 집필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체성 찾기'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뭘까.
"내가 1956년생인데, 민족국가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새롭게 구축돼야 하는 시기에 태어났어요. 1950년대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폐허인데, 뭔가 정신적으로 기댈 자원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국가는 만들어졌지만,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사라진 시대였는데, 일제를 견뎌낸 조상들도 부정하고 그 정신적 유산들도 부정한, 아버지를 부정한 세대죠. 김사량이 빛을 찾아 헤맨 것처럼 해방 이후 아버지 없는 세대들이 구원의 버팀목을 찾아다닌 거죠."
그는 아직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지만, "김사량이 국가와 민족의 바탕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그것을 만들려고 하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뭔가 출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과학적으로 절대 못 풀고, 논리로 풀 문제는 아니다. 해답은 그 원류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기 이전 상태에 같은 고민으로부터 두 개의 길이 나왔다. '어느 체제가 우월하다'가 아니라 두 개의 길 나온 거다. 원점을 까마득하게 잊었기 때문에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가서 일단 공감을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상당히 감동적이더군요. 고대와 미래를 마구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 상상력이야말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좋은 힘입니다. 상상의 미학인데, 남북문제도 논리나 이념으로 풀리는 것보다는 상상력의 미학에서 풀린다고 봐요. 김영남이 흘린 눈물을 보고 우리에게도 눈물이 돌 수 있는 교감, 그 교감에서 풀릴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낭만적이다, 사회과학자 맞냐는 비난도 하겠지만, 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핵무기는 핵으로 풀리지 않는다. 그럼 뭘로 풀 것인가. 문화예술인들의 힘이 엄청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주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몇 권의 소설을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조선 말기 사상가인 유길준(1856∼1914)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과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이야기가 우선 관심사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학자로 살아오다 뒤늦게 문학에 발을 들인 소감을 묻자 "세상에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건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고 훨씬 더 많은 부분을 감성ㆍ감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과학은 작은 법칙과 규칙을 보여주긴 하지만,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이걸 설명한다는 것이 답답해지고 가끔은 이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감성의 세계는 자유롭고 나를 해방시켜 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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