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바로 잡을 두 번의 기회 날린 공정위
1차 조사 전원회의 상정 안하고 종결…"재조사하자" 내부 의견 배척
외압·내부 보고서 묵살 의혹 여전히 불투명…공은 검찰과 법원에
(세종=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SK케미칼과 애경의 전직 임원 4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억대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제재안을 12일 내왔다.
하지만 2016년 8월 한 차례 사실상 무혐의 결정을 내리고서 1년 반 만에 결론을 내린 터라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특히 무혐의 결정 과정에서 일었던 외압 의혹과 재심의를 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이 배척된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울러 공정위가 강력한 제재안을 내놨다고 하더라도 향후 검찰과 법원에서 다른 결론이 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 공정위에 있었던 두 번의 기회
공정위는 이날, 작년 8월 시작한 이 사건 재조사 결과 SK케미칼, 애경, 이마트[139480]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억3천400만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표시광고법이 허용하는 최대 과징금이다.
또 SK케미칼 김창근·홍지호 전 대표이사와 애경 안용찬·고광현 전 대표이사, 각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전직 대표이사까지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등 강력한 제재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점에 있다.
공정위에는 이날 결론 이전에 최소한 두 번 이 사건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공정위는 한 차례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2016년 8월 사실상 무혐의인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공소시효(위법행위로부터 5년)가 지났고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에 대한 인체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외압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결과는 면죄부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이 사건을 심의한 소회의 위원 3인은 사회적 관심 등을 고려해 전원회의에서 이 사건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주심위원이었던 김성하 전 상임위원은 이런 의견을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전 위원장은 표시광고법의 경우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라는 점, 전원회의로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소회의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전원회의 상정은 무산되고 심의절차가 종료됐지만, "정 전 위원장의 개입은 외압"이라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 두 번 기회 날린 과정 여전히 소명 안 돼
공정위의 두 번째 기회는 심의절차 종료 석 달 뒤 내부에서 나왔다.
2016년 11월 공정위 심판관리관실은 공소시효 기산일을 연장할 가능성이 있어 이 사건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들은 같은 해 12월 비공식적으로 재심의 여부를 논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린 뒤 상황 변화가 크지 않아 재조사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과정은 작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지며 뭇매를 맞았다.
공정위는 작년 9월 해당 제품의 위해성이 입증됐다며 재조사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형사상 공소시효는 지나 고발 처분은 불가능하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혔다.
하지만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아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가 2013년 4월까지 추가로 판매된 사실을 확인해 공고시효를 연장할 수 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공정위는 작년 12월 외부 전문가 TF(태스크포스)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리 과정을 평가한 보고서를 내놨지만, 외압과 내부 묵살 의혹은 소명되지 않아 반쪽 결론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위는 이날 재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도 보도자료에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뒷북' 조사 결과였음에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비자나 잠재적 피해자의 피해구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유체이탈'식 화법을 구사했을 뿐이다.
◇ 공은 검찰과 법원에…공정위 제재안 바뀔 수도 있어
공정위의 이날 제재안이 앞으로 검찰이나 법원에서 다른 방식으로 변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정위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가 2011년이 아닌 2013년 4월 2일 한 소매점에서 판매됐다는 기록을 찾아내 공소시효를 늘릴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웠다.
두 업체는 재조사 관련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이 판매 기록에 대한 문제 제기를 꾸준히 제기했다.
나름대로 '리콜'을 위해 노력했지만, 소매점 창고 안까지 뒤져서 제품을 회수할 수 없다고 항변하며 직접적인 판매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공정위의 판단은 1심에 해당하므로, 해당 업체들은 2심 법원에서 이 부분에 대한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소시효가 매우 촉박하다는 점도 문제다. 공정위가 공소시효를 소매판매 기록을 통해 연장했지만, 오는 4월에 끝난다.
검찰은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사건의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 사건과 관련 전직 대표에 대해 '관리 책임'을 물어 검찰에 고발했다.
촉박한 시간 안에 검찰이 사건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이 관리 책임에 대한 판단을 달리할 수 있다. 전직 대표 등을 '공소권 없음'으로 기소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강력한 제재안을 들고나온 공정위의 결론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2vs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