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백두혈통' 김여정, 평화 메시지 갖고 오기를
(서울=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의 자세가 달라진 것 같다. 북한은 예술단원을 태우고 내려와 강원도 묵호항에 정박 중인 만경봉호의 깃발을 7일 북한 국기인 인공기에서 한반도기로 교체했다. 이번 올림픽을 남과 북이 합심해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하는 '평화 올림픽'으로 치러야 한다는 남한 내 여론을 의식한 듯하다. 올림픽 개막식 전날로 예고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도 북한 내부 행사로만 치르려는 움직임이 감지됐다. 자신들이 초청했던 외국 언론사 취재진의 방북을 갑자기 불허했고, 중국 정부 인사도 초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평화의 제전' 개막 전날 대규모 열병식을 벌이는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목소리를 고려했을 수 있다. 나아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등 최첨단 무기를 열병식에서 제외하고 규모도 축소한다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북한의 협조적 조치를 환영하고 또 기대한다.
개막식에 참가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구성도 기대 이상이다. 단장은 북한의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단원에 포함됐다. 또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휘 당 부위원장과 남북고위급 회담 단장인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도 들어갔다. 특히 김여정은 고 김일성 주석 일가를 뜻하는 '백두혈통'으로서 처음 남한 땅을 밟는 것이다. 실세 이인자로 알려진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보다 그 상징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김여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갖고 오는 거 아니냐는 희망적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이 주목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하다. 어렵게 다시 열린 남북대화를 잘 살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여정이 어떤 메시지를 갖고 왔는지에 큰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개막식을 전후해 북미 간 회동이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다. 당장 의미 있는 만남을 기대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김영남 위원장이 우연히 만나기만 해도 그 상징적 의미는 크다. 얼마 전까지 미국은 북미 접촉 가능성에 노골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에 북한 대표단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하지만 미국 쪽에서도 다소 누그러진 듯한 기류는 느껴진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 이어 펜스 부통령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는 말을 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등 공식 대화 조건을 철회한 건 아니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의 접촉 가능성을 아예 닫은 것 같지도 않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는 우리 정부에 달렸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절묘한 접점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안타깝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표면적 태도는 초강경이다. 미국이 평창 올림픽을 '북한과의 정치 게임'으로 변질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 나올 정도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을 올림픽 개회식에 초대한 것부터 그렇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 천안함기념관 방문과 탈북자 면담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을 활용해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널리 알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평화 올림픽'의 취지에 맞지 않고, 축하사절로서도 양해의 한계를 넘는 행동인 것 같다. '그럴 거면 뭐하러 오느냐'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펜스 부통령은 7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동해 북한의 '미소(微笑) 외교'를 경계해야 할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북한이 '핵 포기를 위한 구체적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최근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평가와 배려가 너무 인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남북 간 해빙 분위기를 북돋우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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