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 세력 이끈 채제공 문집 '번암집'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정조 연간에 남인(南人)의 영수로 활약한 번암(樊巖) 채제공(1720∼1799)의 문집인 '번암집'(樊巖集)이 처음으로 번역·출간됐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번암집'의 일부를 우리말로 옮기고 해제를 붙인 '번암집'(전 3권)을 펴냈다.
현감을 지낸 채응일의 아들로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채제공은 남인 세력이 숙종 대의 권대운(1612∼1699) 이후 약 100년 만에 배출한 정승이다.
그는 1743년 문과에 급제해 영조의 신임을 받았으나, 1758년 도승지로 있을 때 영조가 내린 폐세자 비망기를 다시 반납했다. 이는 훗날 정조가 사도세자를 추숭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한 일종의 사건이었다.
채제공은 정조가 즉위한 뒤 예조판서와 형조판서, 규장각 제학에 임명됐으나 1780년 홍국영의 상소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1788년부터는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영의정을 비롯한 고위 관직을 두루 맡았다.
정조는 59권, 27책으로 구성된 번암집 발간에 직접 관여했다. 1799년 채제공이 세상을 떠나자 문집 초고를 검토했다. 그러고는 문집 첫머리에 "호걸스러운 기상으로 써 내려간 필력 굳세니/ 그대의 초상화를 대하고 있는 듯하네"로 시작되는 어제시(御製詩)를 남겼다.
이번에 번역된 번암집의 첫 번째 책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린 문서를 뜻하는 사륜(絲綸), 왕이 쓴 편지인 어찰(御札), 권1∼2가 실렸다. 두 번째 책에는 권3∼5, 세 번째 책에는 권6∼9가 수록됐다. 번역된 글의 대부분은 시다.
백승호 한남대 교수는 해제에서 "번암집 간행은 채제공의 후손, 영남 사대부와 문인들의 총체적 협력하에 이뤄진 19세기 남인의 일대 사업이었다"며 "채제공의 글은 개성과 참신함을 추구한 당대의 문풍과 달리 정조의 정치를 보필하는 경세적 성격을 띠었다"고 설명했다.
홍기은·송기채·조순희·양기정 옮김. 각권 448∼516쪽. 각권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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