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불평등·소외…우리는 '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강원국제비엔날레, 강릉서 3일 개막…23개국 작가 110여점 출품
(강릉=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새하얀 벽을 거대한 개미 조각들이 채우고 있다. 멀리서 보니 개미가 이루고 있는 형상이 두 개의 해골이다. 개미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난민을 떠올리게 한다.
남미 콜롬비아 출신 작가인 라파엘 고메스 바로스가 제작한 이 작품의 이름은 '집 점령'을 뜻하는 '하우스 테이큰'(House Taken). 오랜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고 사회가 분열된 콜롬비아의 역사, 나아가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다 고향을 떠나는 세계 각지 이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인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고 있지만, 폭력과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동체가 무너지고 파편화하면서 소외 현상은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는 '악'(惡)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을 맞아 3일 개막하는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미술 작품으로 보여준다.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라는 주제로 강릉 경포호 인근 녹색도시체험센터 일원에서 펼쳐지는 이번 강원국제비엔날레에는 23개국 작가 58명(팀)의 작품 110여 점이 출품됐다.
개막에 앞서 2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홍경한 예술감독은 "전쟁과 내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리아, 레바논, 모잠비크 작가도 초청했다"며 "전시 작품의 70%는 신작이고, 새롭지 않은 작품은 재해석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은 이어 "3층 건물인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가 미술관이 아니어서 별도로 가설 건물을 지었다"며 "임의로 설계한 가설 건물은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동으로 명명된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에는 주로 회화와 사진 작품이 전시돼 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관람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작가인 양아치는 물질문명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멕시코 작가 호아킨 세구라는 주요 8개국(G8) 국기를 찢어 정치력과 경제력에만 좌우되는 세계 질서를 비판한다.
미국·일본·이탈리아 작가로 구성된 '돈트 팔로우 더 윈드'(Don't Follow the Wind)와 카자흐스탄 출신의 알마굴 멘리바예바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될 수 있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인간 소외와 관련된 작품도 많다. 지난해 간암으로 별세한 다큐멘터리 감독 박종필은 중증 장애인, 실직 노숙자, 세월호 민간 잠수사의 고달픈 현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또 김기라와 김형규는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집단화의 광기를 지적하고, 가치의 다양성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가설 건물인 B동은 A동보다 더 현실 비판적인 작품들로 꾸며졌다. 김승영은 스피커, 벽돌, 도르래, 쇠사슬로 이뤄진 작품 '바벨타워'로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조덕현은 낡은 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느슨해진 인간관계를 조명한다.
전시장을 돌고 나오면 작가들이 한꺼번에 쏟아낸 문제 제기에 공감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 현대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악'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엔날레 관람료는 무료이며, 하루 네 차례 해설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다만 일부 작품은 어린이가 보기에는 과격하고 부담스럽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