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혁신대명사' 美제록스 IT혁명에 좌초…日후지필름에 흡수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115년간 미국 혁신기업의 대명사 역할을 한 제록스가 디지털 혁명의 파고를 넘지 못한 채 일본 후지필름에 넘어갔다.
제록스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일본 후지필름 홀딩스와의 합작회사인 후지제록스와 사업을 통합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후지필름이 통합 후 후지제록스의 지분 51%를 보유해 대주주가 된다.
후지필름은 통합 후 전 세계 직원 1만 명을 감축해 비용을 17억 달러(1조8천190억 원) 절감할 계획이다.
제록스가 통합 후에도 브랜드와 상장을 유지할 예정이지만 이번 거래는 미국 산업계 아이콘의 추락을 의미한다.
1903년 설립된 제록스는 1938년 발명가 체스터 칼슨으로부터 세계 첫 복사 기술 특허권을 사들였고 1959년에는 사무용 복사기를 개발해 전 세계 사무실의 필수품으로 만들었다. '복사하다'라는 의미로 '제록스'가 쓰일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그러나 미국 반독점 당국이 복사기 특허의 개방을 명령한 것을 계기로 일본 복사기 회사들이 속속 등장한 탓에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시장을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이메일의 부상과 전자적 문서 전송 방식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제록스 복사기의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제록스는 오늘날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같은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마우스가 탑재된 컴퓨터도 처음으로 개발했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제록스는 1989년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가 인기를 끌자 유사 기술이 사용됐다며 애플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제록스의 주가는 1990년대 후반 150달러를 넘었지만 매출과 이익이 침체한 탓에 최근에는 30달러를 겨우 넘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결국 제록스는 지난해 비즈니스 서비스 사업부를 분사하면서 복사기·프린터 전문회사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제록스는 지난달 최대주주인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과 3대 주주 다윈 디슨으로부터 제프 제이컵슨 최고경영자(CEO)의 즉각적인 해임과 매각 등 전략적 대안을 검토하라는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칼럼니스트 마이클 힐지크는 CNN머니에 "애플이 보호할 유산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시장에 출시하는데 더 유능했고 민첩했다"며 "제록스는 덩치가 너무 컸으며 도매업을 전체 신사업으로 이전하는 데 과도하게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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