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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인 첫 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박사
"고용 문제, 경제구조 개혁과 맞물려 추진해야"
"생산물 만들고 가져가는 과정 불공평하고 비효율적"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에 임명된 이상헌 박사(51)를 2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ILO 본부에서 만났다.
서울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000년 연구관으로 ILO에 첫발을 디딘 뒤 최근까지 ILO 정책담당사무부총장 특보를 지냈고 얼마 전 고용정책국장(D2)으로 승진했다.
D2급은 ILO 사무국에서도 23명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고용정책국은 가장 많은 인력과 예산을 다룬다.
경제학자이면서 ILO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은 그에게 외부의 객관적 시각으로 청년고용과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 한국 사회의 난제에 대한 해답을 요청했다.
그는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풀려면 경제구조 개혁이라는 큰 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고용과 관련해 "청년 실업률만 보면 한국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독일조차도 청년 실업률이 10% 넘어가는 건 흔하다. 문제는 추세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장 임금이 높지 않아도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한시적이고 단시적인 기회만 주어지다 보니 지금 청년층이 40대 핵심 근로계층이 되는 4∼5년 뒤가 더 문제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박사는 "한국 경제구조 자체가 청년한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오히려 반대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은 투자 제약이 심하고 중산층이나 그 이하 쪽은 소득 구매력이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생산해서 그에 맞는 몫을 가져가면 원론적으로 경제는 잘 돌아가는 데 한국은 어떤 지표를 살펴봐도 생산물을 만들고 가져가는 과정이 불공평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박사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치를 가져가는 구조가 문제"라며 "선진국은 대기업, 중소기업 생산성 격차가 10∼15% 포인트인데 한국은 40%에 이른다. 이걸 바로잡지 않으면 노동, 고용정책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의 고용창출은 현재 상태로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돈이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공공부문 정책을 디자인해서 가능성이 보이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10만 명 일자리를 만들 거면 이 사람들 장래를 고려해 5만 개를 만들더라도 영속적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ILO가 주창하는 임금주도 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에 오해가 많은데 '절대 소득'을 높이는 게 아니라 소득 분배를 개선하면 성장 여지가 있다는 거다. 연구·개발은 기본이고 대기업-중소기업, 기업과 노동자, 노동자간 등 3개 층위에서 소득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최저임금을 빼면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에 속하지 않은 보통 근로자가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 가입률이 10%로 낮은 상황에서 최저임금 외에 근로자가 임금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황이지만, 최저임금만으로 여러 변화를 한꺼번에 이루려다보면 근로자 간 대립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잡(Job)'이라는 개념이 없다. 선진국에서는 일에 임무와 자격요건이 다 있다. 똑같은 일을 하면 똑같은 임금을 받는 건 맞는 얘기지만 사람 뽑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요건, 교육, 경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있는 비정규직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으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납득할만한 로드맵이 지금은 없다. 로드맵 없이 당위적으로 일을 추진하면 당사자는 환영하지만, 공감대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도 결국 정부가 장기간 로드맵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저임금제가 없는 스위스 노사 관계도 참고할 만한 예로 들었다.
스위스는 산별노조가 발달해 있어 사측은 산별노조와 협상을 하고 애초 임금 협상 출발점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잡기 때문에 큰 갈등이 없다고 한다.
스위스 산업을 떠받치는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라 생산물을 가져가는 과정이 불공평할 수 있는 소지도 적다.
그는 "스위스는 오히려 규제가 촘촘하다. 다만 규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제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고용정책은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책"이라면서 "노동, 고용정책과 더불어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정책이 같이 돌아가지 않고 노동시장만 보완해서 바꾸려고 하면 내부에 과부하가 걸린다"고 덧붙였다.
mino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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