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군정치하 태국서 '반군부' 운동 본격화 조짐
방콕서 이례적 '총선연기 반대' 시위…시민단체·학자 연대해 군부 성토 순례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부가 내린 정치집회 금지 조처로 근 4년간 억눌려 있던 태국 국민의 민주화 등 요구가 하나둘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2014년 이후 정치집회가 금지된 상태임에도 수도 방콕에서는 총선 일정 지연에 항의하는 이례적인 시민 집회가 열리고, 시민운동가와 학자들은 대규모 연대조직을 결성해 시민행진을 진행하며 군부를 성토하고 있다.
28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방콕 시내 한 지상 전철(BTS)역에서는 100여 명의 민주화 운동가들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석자들은 오는 11월로 예정됐던 민정 이양을 위한 총선을 예정대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집회가 금지된 태국에서 이례적으로 열린 이 날 집회는 총선연기의 여지를 남긴 국가입법회의(NLA)의 최근 입법조치에 대한 항의 성격이다.
지난 2016년 국민투표를 통과한 태국의 새 헌법은 4대 주요 정부조직법 반포 후 최대 150일 이내에 총선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부 정권의 최고지도자인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이 헌법 규정을 근거로 4대 정부조직법 반포 직후인 오는 11월 총선이 치러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도 11월 총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NLA는 지난 25일 4대 정부조직법 가운데 하나인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법안을 처리하면서, 총선 시기를 정부조직법 발효 후 90일 이내로 못 박아 오는 11월로 예정됐던 총선을 내년 2월까지 늦출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를 비롯한 군부 지도자들은 NLA의 입법활동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운동가들은 NLA의 조처가 군부의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시위를 주도한 랑시만 롬은 "우리는 총선이 반드시 올해 치러져야 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내년으로 연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를 하기 위해 모였다"면서 총선연기 움직임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다음 달 10일 재차 집회를 열기로 했다.
때를 맞춰 쿠데타 이후 공식 활동을 하지 못했던 정당들도 시민들의 반발에 동조하고 있다.
민주당 총재인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는 "군정 최고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가 총선연기를 원한다면 대중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의 전직 의원인 워라차이 헤마는 "더는 쁘라윳 총리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11월 총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대규모 대중 봉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시민운동가와 학자들은 '국민이 간다'(People Go)라는 연대조직을 결성해 군부 정권을 성토하면서 '우리는 걷는다'(We Walk)라는 슬로건 아래 국토 순례에 돌입했다.
방콕 북부의 빠툼타니에서 북동부 콘깬까지 450㎞ 순례에 나선 이들은 여정의 중간중간에서 국민과 만나 4년 가까이 집권하면서 국민을 억압해온 군부를 성토하고 있다.
이들은 총선 연기를 반대하고 최근 명품 시계 스캔들에 휩싸인 군부 이인자 쁘라윗 왕수완 부총리의 퇴진도 요구하고 있다.
군부 정권은 순례를 불법으로 규정해 차단했지만, '국민이 간다' 측은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
지난 2014년 5월 극심한 정치적 분열과 혼란을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태국 군부는 2년여의 준비 끝에 지난 2016년 8월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성사시켰다.
태국 국민 61%가 찬성한 새 헌법에는 총선 이후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250명의 상원의원을 최고 군정 기구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O)가 뽑고, 이들을 500명의 선출직 의원으로 구성된 하원의 총리 선출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담겼다.
또 선출직 의원에게만 주어지던 총리 출마자격도 비선출직 명망가에게 줄 수 있도록 했다. 군인 출신의 군부 지도자들에게도 총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다.
개헌 이후 총선 일정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으나 지난 2016년 10월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고 1년간 장례 절차가 진행되면서 관련 논의가 모두 중단됐다.
또 푸미폰 국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이 새 헌법의 일부 조항을 다시 고치면서, 개헌 후속 조처인 정부와 기관조직법 정비 일정도 영향을 받았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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