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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금지하지 않았지만 금지된 가상화폐 신규투자
당국, 여론 눈치에 "은행들이 결정"…은행들은 규제에 부담감
"신규 투자금 못 들어오고, 기존 투자금도 못 나가는 상황"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가상화폐 실명확인 시스템이 오는 30일 개시되면 그동안 가상계좌 발급 중단으로 길이 막혔던 가상화폐 신규 투자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자금세탁 방지'를 명목으로 간접적인 규제에 나선 데다, 은행들이 이 규제에 부담을 느끼면서 실제 투자가 이뤄지기는 당분간 어렵게 됐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30일 예정대로 가상화폐 거래 계좌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시작한다.
그러나 기존 가상계좌를 실명 시스템으로만 전환할 뿐, 가상화폐 투자용 개인계좌를 발급하거나 가상화폐 거래소에 법인계좌를 터주는 데는 소극적이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강화한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계좌를 만들 때 실명을 엄격히 확인하고, 위반이 드러나면 엄벌하겠다는 것이다.
법인계좌를 새로 만든 거래소를 통해 자금세탁이 이뤄졌거나, 은행이 이런 거래를 잡아내지 못했다가 나중에 드러날 경우 유·무형의 제재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이드라인 강화로 은행 입장에선 '규제 비용'이 늘었다"며 "가상화폐 고객 확보로 예상되는 수익과 이 비용을 비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 입장에선 자금세탁 규제와 제재도 부담이지만, 금융당국이 치켜뜬 '도끼눈'이 더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명 시스템이 개시되자마자 보란 듯이 계좌를 만들어줄 만큼 간 큰 은행은 없을 것"이라며 "그래서 다들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이처럼 서로 눈치를 보는 바람에 가상화폐 신규 투자가 어려워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 자율'이지만, 금융당국이 내심 바라던 상황이기도 하다.
일단 신규계좌 개설 여부는 어디까지나 은행들이 결정할 일이며, 금융당국은 개설 절차나 계좌 관리에 문제가 없는지 따질 뿐이라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김용범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신규 고객을 받는 것은 은행의 자율적 판단"이라면서도 "은행들은 철저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은행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를 언급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에 대한 고강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법무부와 금융위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 다만 직접적이고 급격한 개입·금지가 반발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박 장관을 반면교사로 삼은 금융당국의 행보는 정치적 부담을 은행에 떠넘겼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더 큰 바보'라는 자조적 표현을 쓰며 신규 투자금 유입을 기다리던 기존 투자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투자자는 "규제 탓에 신규 투자금이 유입되지 못하고, 기존 투자금은 시세 급락으로 못 빠져나간다"며 "가상화폐 시장이 '고인 물'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zhe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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