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데칸고원 마을 아우랑가바드
고대 인도 '건축 & 미술'의 정수를 만나다
(뉴델리=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인도는 29개 주가 있는 연방국가로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남쪽 끝 타밀나두 주까지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자랑한다. 이 가운데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 데칸고원에 있는 아우랑가바드는 고대 인도 미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인도 북부 아그라 디스트릭트(한국의 군에 해당하는 행정단위)에 세워진 타지마할이 중세 말 인도 건축과 조각의 아름다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면, 아우랑가바드에 있는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은 그보다 1천 년 이상 앞선 7~8세기부터 기원전까지 고대 인도 건축과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도가 1983년 자국 내 문화유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처음 등재할 때 모두 4개의 건축물이 함께 올랐는데 이 가운데 2개는 타지마할과 그 주변에 있는 아그라 포트(아그라 성), 나머지 2개가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이었을 정도로 이들은 인도의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 영국군 장교가 발견한 아잔타 석굴
아우랑가바드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100㎞ 떨어진 아잔타 석굴은 도심에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가면 도착한다. 아직은 왕복 2차선 도로여서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시로 추월하는 차량으로 안전도 다소 걱정되지만, 필자가 방문한 지난해 12월 말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었으니 조만간 이동이 편리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30개의 불교 석굴 사원으로 이뤄진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 무렵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해 서기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현존하는 사원이 대부분 완성됐다. 아잔타 석굴은 수 세기 동안 그 존재가 잊혀 있다가 1819년에 사냥을 하던 영국군 장교 존 스미스가 발견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말굽 모양 계곡을 따라 형성된 높이 76m 바위산 안쪽에 석굴을 파 만든 불교 사원들은 저마다 각각의 벽화와 부처상, 탑 등을 갖추고 있어 어느 하나 빠뜨리기가 아쉽다. 1번 석굴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550m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30개 석굴 하나하나를 모두 들어가 내부를 둘러 보는 데에는 한나절도 부족하다.
중간중간 계단도 많기에 거동이 불편한 관람객을 위해 4명의 장정이 들어서 관람객을 석굴 앞으로 데려다주는 가마도 마련돼 있다. 물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입장권을 끊고 계단을 올라 1번 석굴 쪽으로 다가가다 보면 반원형으로 생긴 바위산과 그사이에 만들어진 석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적거리는 인파와 함께 신발을 벗고 1번 석굴 사원에 들어가면 석굴 속 약한 조명 가운데 유명한 '연꽃을 손에 든 관음보살'(연화수보살) 벽화가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환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안쪽 방에 있는 부처상과 천장 벽화, 기둥에 새겨진 작은 조각 하나하나에서도 고대인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2번 굴로 이동하면 부처의 전생과 이생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볼 수 있다. 이렇게 3번, 4번 순서로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아치형 창이 있는 9번 석굴에 다다른다. 이즈음에서 그동안 걸어온 석굴 쪽을 되돌아보면 1번 석굴 입구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생기가 느껴진다.
중간중간 벽화를 만드는 데 사용된 안료가 전시된 석굴, 직원이 조명을 들고 부처상의 이쪽저쪽을 비추며 표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석굴 등을 지나 마침내 부처가 열반에 드는 장면을 형상화한 길이 7m의 부처 와상이 있는 26번 석굴에 도착한다. 오른팔을 바닥에 기대고 누워 있는 이 와상 앞에서 많은 관람객은 그 발끝이라도 만져보려고 손을 뻗는다.
이곳의 석불은 헬레니즘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과 달리 인도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굽타 양식으로 옷 주름선 등을 생략하고 인체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조각의 곡선미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 정도다.
◇ 서로 다른 종교사원 공존 '엘로라 석굴'
이제 아잔타를 떠나 방향을 바꿔 아우랑가바드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25㎞ 떨어진 엘로라로 이동한다.
바위산인 차라난드리 언덕을 깎고 뚫어서 만든 엘로라 석굴은 아잔타와는 달리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등 서로 다른 종교사원 34개가 모여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힌두교 사원인 16번 석굴 '카일라사 사원'이다.
라슈트라쿠타 왕조 크리슈나 1세(757∼783) 시기에 만들어져 힌두교 3대 주신 가운데 하나인 시바 신을 모시는 이 사원은 높이 90m, 너비 60m의 큰 바위 덩어리를 조각해 만든 것으로 그 웅장함과 섬세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입구로 들어가 올려다보는 탑과 코끼리 상 등 사원의 모습도 굉장하지만,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 전체 사원을 내려다보면 이 거대한 바위를 위에서부터 쪼아 나갔을 제작 당시 석공들의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된다.
카일라사에서 나와 옆에 있는 15번 석굴 '다스 아바타라 케이브'로 들어가면 카일라사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면서도 소박한 힌두 사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힌두교의 또 다른 3대 주신인 비슈누의 여러 화신을 조각한 것을 볼 수 있다.
◇ 타지마할 축소판 '비비카 마크바라'
다시 남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8세기 건립된 불교 사원인 12번 석굴 '틴 탈'을 만나게 된다.
이 시기는 이미 불교가 쇠퇴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때라 화려한 아잔타 석굴 사원들과 달리 입구 기둥 등은 단순하지만 3층으로 된 사원 내부에 있는 많은 조각은 아잔타와는 또 다른 고졸(古拙)한 멋을 품고 있다.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을 모두 둘러보고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하루쯤은 아우랑가바드 시내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아우랑가바드는 1636년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데칸 고원에 있던 아나드나가르 왕국을 합병한 이후 아들 아우랑제브를 태수로 이곳에 부임시키면서 그의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무굴제국 시기 전후의 많은 유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은 황제가 된 아우랑제브가 자신의 왕비가 숨지자 만든 '비비카 마크바라'(숙녀의 무덤)를 들 수 있다.
비비카 마크바라는 아버지인 샤 자한 황제가 자신의 애비(愛妃)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타지마할과 똑 닮은 모습으로 마치 축소판처럼 보인다. 다만 국가적으로 보존과 관리가 이뤄지는 타지마할과 달리 비비카 마크바라는 그만큼 관리되지 않아 군데군데 훼손된 부분이 눈에 띄어 안타깝다.
비비카 마크바라에서는 건물 중심 지하에 안치된 관을 볼 수 있는데, 많은 관광객이 관 위에 떨어뜨린 돈이 수북이 쌓인 것은 저승 노잣돈 명목으로 돈을 관에 끼우는 우리 풍습을 떠올리게 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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