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군·영감·사랑…조선시대 '남편'을 부른 호칭은
채백 교수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집안사람들과 종들과 온 집안이 일찍이 저 부부가 가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바로 공경하는 손님과 같았다."
한글 고전소설 '소현성록'에는 조선시대 양반가 부부가 서로를 '손님'처럼 여기며 살았다는 대목이 있다. 이 소설에는 부부가 낮에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밤에 두 사람만 있는 내실에서 이야기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의사소통 양상은 과연 어떠했을까. 채백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쓴 신간 '조선시대 백성들의 커뮤니케이션'은 소현성록을 비롯한 고전소설 8종과 1910년을 전후해 발간된 신소설 9종에 나타나는 소통 방식을 분석한 책이다.
특히 흥미를 끄는 부분은 호칭이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남편과 부인이 서로 높임말을 썼고, 남편은 부인을 '부인'이라고 하거나 성씨를 불렀다.
그러나 부인이 남편을 지칭하는 말은 조금 복잡했다. 소현성록에서 부인은 '낭군' 혹은 '상공'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몰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춘풍전'에서는 부인이 남편을 '여보시오'나 '이녁'이라고 했다.
개화기에는 부부 사이에 '영감'과 '마누라'라는 호칭을 쓰는 빈도가 높아졌다. 영감은 본래 정3품과 종2품 벼슬아치를 부르던 말이었으나, 늙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마누라도 궁중에서 쓰는 극존칭이었지만,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는 단어가 됐다.
당시에는 남편을 '사랑'(舍廊), 부인을 '아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용어들은 남성과 여성이 거처하는 곳에서 비롯됐다.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에는 집안의 남자 어른을 '사랑양반'이라고 지칭하는 대목도 있다.
저자는 "가족이나 친척 관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혈연의 상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면서도 "정실의 아들인 적자와 첩인 서모, 신분 차이가 있는 장모와 사위는 서로 경어를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반의 경우 거주 공간이 구분돼 부부 사이에 상호 교류가 거의 없었고, 특히 낮에는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컬처룩. 348쪽. 2만원.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