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가곡 '눈' 만든 김효근 교수
"겨울이 춥다고들 하지만 내겐 마음 따뜻한 계절"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천지사방이 온통 하얗다. 동화 속 같은 설국의 고요함! 그 눈길을 무념무상으로 하염없이 걷는다. 저만큼에서 문득 들려오는 겨울새 소리. 순백의 색채와 고요한 울림이 아득한 꿈나라를 닮았다. 가곡 '눈'의 작사·작곡자인 김효근(57)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를 만나 호젓한 흰 눈 세상의 정감을 그의 음악 세계와 함께 느껴본다.
'조그만 산길에 흰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새하얀 산길을 헤매이고 싶소'
겨울이 깊어가는 1월 중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실. 고풍스러운 피아노 앞에 앉은 김효근 교수가 하얀색 건반을 어루만지듯 능숙하게 두드려간다. 높은 듯 낮아지고, 빠른 듯 느려지는 음률의 절묘한 흐름. 하얗게 흐린 유리창 밖에서는 함박눈이 금방이라도 펑펑 쏟아질 듯하다.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 버리오/ 가슴에 새겨 보리라 순결한 님의 목소리/ 바람결에 실려 오는가 흰 눈 되어 온다오'
상상은 나래를 편 채 드높이 날아오르고, 은빛 눈 세상은 시공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다. 둘러보니 교수실 사방의 책꽂이에는 경영학서와 CD 음반이 빼곡하다. 경영과 예술의 공존 상생이라고 할까. 연주를 마친 김 교수는 속 깊은 감회를 들려준다.
"이 피아노와 함께한 지도 벌써 31년이 됐네요. 미국 유학 시절인 1987년에 처음 만났고, 1992년 이화여대 교수로 오면서 여태껏 동행하고 있습니다. 삶의 양 날개가 돼버린 경영과 예술처럼 운명적 인연입니다."
◇ 음악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경영학도
김 교수가 대학 3학년 때인 1981년 가을이었다. 서울 남산 기슭의 숭의여고 대강당에서는 새로운 음악 스타가 탄생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문화방송의 생중계로 진행된 제1회 MBC대학가곡제. 20대 초반의 이 경영학도는 서정성 깊은 가곡 '눈'을 발표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영예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지원자 95명 중 음악 비전공자는 그가 유일했다.
"발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대상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해냈구나!' 싶어서지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깊이 빠져든 음악이었기에 더 그랬을까요? 11월 21일은 '눈'의 생일입니다!"
김 교수는 사계절 중 가을과 겨울을 유난히 좋아한단다. 이는 '가을의 노래' '눈'을 작사·작곡한 배경이기도 하다. 감성적으로 두 계절이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것. 김 교수는 "겨울이 춥다고들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마음 따뜻한 계절"이라고 말했다. '눈'은 서울대 재학 시절에 관악산 기슭의 눈 풍경을 보고 얻은 영감으로 만든 곡이다.
김 교수와 음악의 인연은 천생연분이다 싶게 각별했다. 한편으로 파란만장하기도 했다. 서울 마포에서 살던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2남 1녀 중 장남인 아들의 생일 선물로 귀한 피아노를 사줬다. 하지만 이 아들은 한사코 피아노가 싫다며 만화방 등으로 부모 눈을 피해 도망 다녔다.
그렇게 싫기만 하던 피아노가 사춘기로 막 접어드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정서적 첫사랑이랄까? 아이는 자고 나면 쉴 새 없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전자기타를 배운 것도 이 무렵. 음악적 소질이 뛰어나서인지 배우는 속도가 친구들보다 빨랐고, 선생님도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가르쳐줬다.
음악 활동은 중학교 때부터 본격화한다. 환일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소년합창단 반주자로 합창음악과 관현악에 몰입했고, 여의도고교 시절에는 학교와 교회에서 남성합창단과 성가대의 반주와 지휘를 맡았다. 합창, 오케스트라 등 공연장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다녔다. 고3 때는 진로를 서울대 음대 작곡과로 남몰래 정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음악에 빠진 아들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셨다.
"음악 전공을 한사코 만류하셨어요.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컸습니다. 집안의 장래를 열어야 할 장남이 음악에 빠져 있으니 말이에요. 아버님은 법대로 진학해서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라 채근하시고, 저는 법 공부는 죽어도 못하겠다며 버티는 신경전이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나신 아버님은 저의 보물 1호인 12줄짜리 기타를 마당에 내던져 박살 내셨지요."
부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극적 절충으로 마무리됐다. 법대도 아니고 음대도 아닌 상대를 택한 것. 고교 시절에 전교 1등을 하며 전액장학금을 받은 덕분에 음악 활동이 허용됐다. 부모님은 경제는 생활을 위해 전공하고 음악은 취미로 즐기라며 아들의 경제학과 진학을 받아들였다. 이에 김 교수는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무난히 입학하고, 그 이듬해 1월 1일부터 '나만의 노래를 만들어보자'며 음악 창작에 나선다. 이어 1986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1991년에는 피츠버그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 또 다른 대표곡 '사랑의 꿈'과 '첫사랑'
"이곳 숲길을 걸을 때마다 대학 시절에 아내와 나누던 사랑이 떠오릅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아내가 다니던 이 대학의 캠퍼스에서 청춘의 낭만을 즐겼습니다. 스무 살 나이의 아내 생일에는 신곡 '사랑의 꿈'과 '첫사랑'을 프러포즈 선물로 줬어요. 아내가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결혼 승낙도 바로 그 자리에서 얻었습니다!"
이화여대 교정의 은행나무길을 기자와 함께 걷던 김 교수는 학창시절의 연애담을 살짝 귀띔해줬다. 그리고 감회어린 표정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지난날을 돌아보니 정말 행복하다'면서. 그때 아내에게 '헌정'했다는 이들 노래를 음미하노라면 20대 청춘남녀의 순결한 사랑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그 눈길 마주친 순간이여/ 내 마음 알릴세라 눈길 돌리네/ 그대와 함께한 시간이여/ 나 홀로 벅차다'('첫사랑' 중)
'사랑의 꿈' 역시 달빛 교교한 밤을 배경으로 한 절절한 마음의 구애가다.
'밤은 깊어 고요히 차고 달빛 흐르는데/ 사랑스런 그대 모습 영원 속에 비추라/ 그대 숨길 스치는 곳에 꿈의 노래 일고/ 그대 눈길 머무는 곳에 사랑이어라(후략)'
결혼 승낙을 받은 자리에서 김 교수는 굳게 약속한다. 이들 노래가 수록된 CD 음반을 어른이 되면 꼭 선물해주겠노라고. 김 교수는 이 '공약'을 25년 만에야 실행했다며 얼굴에 다시 한 번 웃음을 올렸다. 2010년에 낸 제1집 작곡 음반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유학에서 돌아온 뒤로는 한동안 음악 활동을 접다시피 한다. 1992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교단에 선 그는 3년 뒤 초연된 '가을의 노래'와 '그리움' 외에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좋아하는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면 전공분야의 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일부러 마음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 온 국민 마음 울린 '내 영혼 바람 되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김 교수에게도 부모님은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해주신 고마운 은인이자 탄탄한 반석이었다. 그 반석이 무너지거나 사라질 때 충격과 상처는 클 수밖에 없다. 2002년 부친이 별세하고 2007년에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한동안 절대 고독에 시달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어머님이 떠나신 해에는 정말 외로웠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고립감이랄까요? 상실과 결별을 치유할 뭔가가 정서적으로 필요했어요. 음악은 그 요긴한 치유제가 돼줬습니다."
모친 타계 후 김 교수는 음악 활동을 본격 재개한다. 2007년과 2008년 작곡계 원로들의 초대와 권유로 제1회와 2회 대한민국가곡제에
'하나되어 영원하라' '천년의 약속' 등을 잇달아 발표한 것. 그리고 2010년에는 '내 영혼 바람 되어'라는 타이틀로 작곡 제1집을 내놓는다.
'내 영혼 바람 되어'는 미국 인디언의 구전시 '천의 바람(A Thousand Winds)'을 번역해 새롭게 곡을 입힌 노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자신의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사랑하는 이에게 '나는 당신을 떠난 게 아니니 슬퍼 말아요. 난 이제 자유롭게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언제나 당신 곁에 머물고 있어요'라며 위로하는 내용. 이 곡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전 국민의 위로 음악이 됐다.
"세월호 사건이 나고 며칠을 울었는지 몰라요. 깊은 상처로 아파하는 유족과 국민을 위해 음악으로 뭔가를 하자고 다짐했지요. 그렇게 해서 아트팝 합창으로 재탄생한 게 바로 그날의 '내 영혼 바람 되어'입니다. 이 곡은 그해 5월 1일 성악가 147명이 헌정 연주한 게 TV로 생방송되면서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지요."
상실과 아픔, 치유라는 점에서 '내 영혼 바람 되어'는 '어머니 사랑'(이향숙 작시·김효근 작곡)과 같은 리듬의 울림을 안겨준다. 몸은 떠났을지언정 마음은 근처에 머물고 있고, 마음은 비록 거리가 있다 할지언정 영혼은 늘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뭉클하게 담고 있는 것. 김 교수는 "이 곡에 빠져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성악가도 도중에 연주를 중단하곤 한다"며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해마다 불러보는 어머니 사랑/ 지나면 들릴 듯 흘러가는/ 바람소리 물소리/ 머잖아 부모 되면/ 돌아볼 날이 많다는데/ 그때는 스치는 꽃내음처럼/ 조금씩 조금씩 알리라/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제야 알았으니/ 어머니 그 사랑 그대로 모두 전하리라'
◇ "예술성과 대중성 하나 되는 공진화 앞장"
근래 들어 김 교수는 예술성(Art)과 대중성(Pop)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트팝 장르처럼 이종 간의 만남과 결합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공진화'(共進化)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의 교수실에 경영서와 음반이 나란히 꽂혀 있고 피아노도 주체로서 당당히 놓여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영'과 '예술'의 만남이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저서 '경영예술'을 출간했다. '인생은 예술'이고 '경영도 예술'이어야 한다는 패러다임과 실천방법론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즈니스 아트(Business Art)죠. 경영도 예술처럼 해야 미래 생존과 성장 발전이 가능합니다. 과학 경영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심미적 직관이 필요합니다. 예술적 경영이자 창조경영이지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단순히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소비자를 미학적으로 감동경험을 주기 위한 생산자의 창작품이라는 존재론적 시각변화가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생명력이 피어나야 한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듯이 우주의 모든 생명이 그 가치를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싹 틔우게 하자는 것. 그 생명이 피어나게 하는 현실적 처방이 바로 예술의 힘이라는 얘기다. 김 교수는 "7천 년 전에 정리된 우리 고대철학의 키워드 '생명사상'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며 "이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2월호 '인터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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