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남도 섬마을 최악 가뭄…"식수도 바닥, 물이 아니라 금"
보길·노화도 주민들 세수도 며칠에 한 번…식당은 손님 거절하는 형편
평년 절반에 그친 지난해 강우량…실줄기 개천물까지 끌어 식수원 조달
(완도=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이것이 금이여, 금"
전남 완도군 보길도에서 19일 만난 최정수(75) 할머니는 '고무대야'로 익히 알려진 물통에 담긴 물을 귀한 황금에 비유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극심한 가뭄이 이어진 보길도에서는 지난 이틀 동안 짧은 급수가 끝나고, 이날부터 열흘간 단수가 시작됐다.
최 할머니는 욕조 모양에 뚜껑이 없는 물통 하나, 원통형 '고무대야' 한 개, 화장실 세면대와 연결된 소형물탱크에 채운 물로 열흘을 살아가야 한다.
빨래는 한 번에 모아서 급수 시작 첫날에만 해치운다.
설거지는 그릇이 개수대를 가득 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간단히 헹궈낸다.
단수 기간 밥 지을 물이라도 떨어질까 몸을 씻는 일은 감히 마음도 먹지 못한다.
금덩이처럼 여기는 물을 조금씩 덜어내 며칠에 한 번씩 고양이 세수로 얼굴만 씻어낸다.
40년 전 보길도에 정착한 최 할머니는 지금 같은 가뭄을 경험한 적 없다고 넋두리했다.
아무리 물 귀한 섬이라지만, 최 할머니를 비롯해 보길도 주민이 겪는 가뭄은 여느 해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보길도 강우량은 713㎜로 최근 10년간 평균 강우량 1천370㎜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주민 80%가 수산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보길도에서 물은 대부분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인다.
농작물 키울 물이 아닌 사람 마실 물이 말라가는 형편이다 보니 섬마을 주민은 생명수를 아끼고자 갖가지 지혜를 짜낸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식당과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신순애(56·여) 씨는 한 방울 물이라도 대야 밖으로 튈까 염려해 물줄기가 최대한 약하게 흘러나오도록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이날 점심 손님맞이에 나섰다.
신 씨는 식기 세척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 오물을 씻어내는 용도 등으로 재활용한다.
채소를 다듬을 때도 햇볕에 말렸다가 흙을 모두 털어낸 뒤 재빠르게 씻어낸다.
장사하는 처지에서 죄스러운 일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
사정은 다리 하나를 두고 보길도와 연결된 이웃 섬 노화도도 마찬가지다. 노화도 해안을 따라 들어선 여러 식당이 주말이면 일찍 문을 걸어 잠그고 '절수'에 들어간다.
신씨는 "물 사정까지 어렵다 보니 이제 젊은 사람들이 섬에 들어와 살 생각을 더더욱 하지 않는다. 내 자식도 마찬가지"라며 "그저 섬에 산다는 게 죄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렇듯 섬마을 주민 생활상을 바꿔놓은 보길도 제한급수는 이날로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7일부터 시작한 간헐적인 단수는 10월 10일을 기점으로 이틀 급수 후 8일 단수 체제로 바뀌었다.
보길도와 노화도 섬마을 주민 7천900명 식수원인 부용저수지의 저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단수 기간은 이달 1일부터 열흘로 늘어났다.
부용저수지에 담긴 물은 이날 4만8천762t으로 저수율 11.6%를 기록 중이다.
지금 추세라면 37일만 버텨낼 수 있는 양이다.
보길면사무소는 주민들 식수난 해소를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불과 한 달여 뒤면 닥칠지 모를 최악의 상황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샘물줄기도 바다로 흘러가지 않도록 개천 곳곳에 둑을 쌓아 웅덩이에 모은다.
물이 1m 남짓한 높이로 고이면 양수기로 퍼내 물차에 싣고 저수지로 달려간다.
물차 8대가 종일 쉬지 않고 섬 곳곳에서 끌어모으는 물은 하루 680t 남짓이다.
개천 웅덩이에서 저수지까지 곧장 호스로 퍼내는 물도 일일 평균 640t가량이다.
면사무소는 섬에서 찾아낼 수 있는 물이라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모아 식수원이 바닥을 드러낼 날을 최대한 늦추고 있다.
보길면사무소 관계자는 "이 가뭄을 해소하려면 500㎜ 정도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야 한다"라며 "홍수가 나면 어떡하나 걱정들 정도로 비가 내려야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오는 3월까지 보길도 강우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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