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갯벌을 가다] ② 철새들의 낙원…하구형 서천 갯벌
갯벌이 주는 풍부한 먹잇감, 멸종위기 도요·물떼새 중간기착지
(서천=연합뉴스) 조성민 기자 = 장항항 나루터에서 소형 어선을 타고 서쪽으로 출발한 지 10여 분.
수평선 너머로 조그맣게 섬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충남 서천군 내 유일한 유인도인 유부도(有父島).
행정구역으로 장항읍 송림리에 속하지만, 남쪽으로 전북 군산 국가산업단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면적 0.79㎢, 해안선 길이 4㎞ 정도인 이 작은 섬은 10여 년 전부터 전 세계 생태학자들이 주목하는 곳이다.
장항항에서 20분가량 달린 끝에 목적지 유부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부터 거대한 갈대밭이 외지인들을 맞는다.
한때 염전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운영을 중단한 지 십수년이 지나면서 갈대와 잡초만 무성하게 자랐다.
유부도 갯벌은 섬 동쪽과 서쪽으로 고르게 분포한다.
이곳은 금강에서 흘러들어온 퇴적물과 바깥 바다로 밀린 퇴적물이 조류를 따라 유부도와 인근 섬 주변에서 만나 형성된 전형적인 하구형 갯벌이다.
물이 차 있을 때는 한적한 서해의 여느 섬 가운데 하나지만 물이 빠진 간조 때면 섬 크기의 20배가 넘는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마을에서 제공한 경운기를 타고 서쪽 해안선을 따라 5분여를 가다 보니 멀리 바닷가 모래톱과 갯벌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검은색 덩어리가 스멀스멀 움직인다.
이 섬의 또 다른 주민이기도 한 검은머리물떼새 무리였다.
수천 마리가 조용히 휴식을 취하다가도 갑자기 갯벌을 빠르게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리를 지어 공중을 선회하는 등 유부도 주인 행세를 했다.
아침 일찍 유부도를 찾았다는 탐조객 10여 명은 조용히 숨죽인 채 이들 철새를 카메라에 담고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천연기념물이자 서천군 군조(郡鳥)인 검은머리물떼새는 동아시아에 사는 개체 중 절반 정도인 5천 마리 안팎이 해마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유부도에는 이들 검은머리물떼새 외에도 전 세계에 200여 쌍만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넓적부리도요 등 국제적 멸종위기 13종, 저어새 등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6종이 관찰된다.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 9종도 서식한다.
철새 가운데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등재한 넓적부리도요(위급), 알락꼬리마도요(위기) 등 8종이 관찰된다.
도요새와 물떼새 등 많은 철새가 유부도와 금강하구 갯벌을 찾는 이유는 먹잇감이 풍부한 데다 외부로부터 위험이 거의 없는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모래와 펄이 적당히 어우러진 섬 갯벌에는 철새 먹잇감인 저서생물이 풍부하다.
갯지렁이와 백합, 동죽 등 조개류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백합과 동죽은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기도 하다.
발목까지 빠지는 갯벌을 걷다 보면 말뚝망둥어, 칠게, 농게, 길게, 밤게 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57종의 환형동물을 비롯해 갑각류 55종, 연체동물 39종이 갯벌 건강을 지키며 철새 먹이 역할을 한다.
바닷가와 갯벌에는 염생식물과 사구식물도 풍성하다.
갈대와 함께 갯그령, 해홍나물, 칠면초, 갯메꽃, 우산잔디 등 생소한 식물이 펄 속에 산소를 공급해 갯벌을 건강하게 해 준다.
환경부 멸종위기종인 흰발농게와 표범장지뱀을 포함해 누룩뱀, 참개구리와 같은 많은 토착종도 다수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부와 단절된 환경이 준 혜택이다.
유부도 갯벌은 2008년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고 2009년 람사르 습지로 등재됐다.
전체 면적이 30㎢로 여의도(2.9㎢) 열 배가 넘는다.
서천군 생태관광과 이두원 주무관은 "유부도를 포함한 금강 하구는 금강에서 밀려온 플랑크톤과 영양가 많은 먹이가 풍부하다"며 "새만금 간척지 조성으로 갈 곳을 잃은 철새에게 금강하구가 매력적인 이주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군에서는 유부도 미래를 지속가능한 보전과 이를 통해 체감형 생태관광기반을 조성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국제적인 생태관광지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하고 탐조대와 방문자센터, 선착장, 부정기선 운항 등 탐조관광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유부도에는 현재 30여 가구 50여 명이 살고 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70명에 달하지만 20여 명은 장항이나 군산에 집을 두고 살면서 고기 잡거나 조개를 캘 때 섬으로 들어와 일정 기간만 거주한다.
정기여객선이 없다 보니 외부 관광객은 거의 없고 최근 들어 철새 연구자들이나 탐조객이 가끔 찾는 정도다.
대부분 마을 주민은 갯벌에서 백합 조개를 캐 생활을 한다.
섬 동편에 염전도 있었으나 오래전 둑이 터져 폐쇄됐다.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유부도도 다른 섬들처럼 개발에 따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섬 동편에 모래채취선이 연중 준설작업을 계속해 해양생태환경이 훼손되고 있고, 서편은 인위적인 방파제 건설에 따른 후유증으로 대양에서 떠내려온 해양 쓰레기가 하루가 멀다고 해안사구 등에 쌓여 천혜의 자연환경을 해치고 있다.
모래펄과 개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뤘던 갯벌도 최근 해양환경의 변화로 인해 성상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 군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min36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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