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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천재시인 이상
문학평론가 권영민 "그는 단순하게 보는 걸 거부했다"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시인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 1910~1937)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작가'로 불린다. 생애는 짧았지만 문학적 업적은 컸다. 그의 작품에 내재된 특유의 난해함은 지금까지도 무수히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이상 전문가로 꼽히는 권영민(71)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미국 버클리대학교 한국문학 겸임교수)를 만났다.
권 교수는 평생 한국 현대문학 작품을 평론하고 문인의 발자취를 추적해온 학자다. 특히 이상의 호적과 경성고등공업학교 학적부를 찾아내고 일본 도쿄 하숙집 위치도 정확하게 밝혀냈다.
권 교수는 현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문학을 전파하고 한국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문학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 고향이 충남 보령의 바다가 보이는 산골 마을입니다. 기차역이 10㎞ 넘게 떨어진 아주 한미한 시골이죠. 중학생 때인 1960년대 초 '벽지학교 책 보내기 운동' 같은 게 있었어요. 서울에서 책을 많이 보내왔죠. 교실 한구석에 도서실을 마련하고 자원해서 도서 반장을 맡았어요. 이광수 전집을 비롯해 김소월, 심훈, 윤동주의 시집이 있었고 수필집도 꽤 많았죠. 집에서 학교까지 20리 길을 책을 펼쳐 들고 내내 읽으면서 왔다 갔다 했어요. 책을 읽고 감동하고 그런 것이 좋았어요.
원래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원양선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어서 '마도로스 권'으로도 불렸는데 책을 읽으면서 장래희망이 문필가로 바뀌었죠. 작가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이 정말 대단했어요. 책 읽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됐어요. 엄청나게 읽었죠. 대학에 들어가서 문학강독 시간에 어떤 작품을 읽으라고 하면 태반이 이미 읽은 것이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서울대 국문과는 문필가를 만드는 학과가 아니었어요. 문학을 연구하는 곳이었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 4학년을 시작하며 친구들과 모여 1년간 목표를 하나씩 정하기로 했어요. 저는 신춘문예에 소설을 당선시키겠다고 했죠. 그래서 소설 두 편을 썼는데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소설 쓰는 것을 접고 평론으로 바꿨어요. 그리고 그게 당선이 됐죠. 그런데 교수님들은 "네놈은 이제 망했다" "네가 뭘 안다고 평론가냐"며 이구동성 야단을 쳤어요.
다시 고민스러워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선생을 1년 한 후 대학원에 들어갔죠. 소설가의 꿈은 완전히 접고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시작한 거죠. 책 읽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고 좋아한 일이었어요. 어떤 무엇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평생 책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 시집을 늘 곁에 두고 읽고, 미국에 갈 때도 시집을 챙길 정도로 시에 대한 애정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시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시는 소설보다 깊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시인은 짤막한 시에 들어갈 언어를 고르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죠.
비평가나 독자의 입장에서 시를 읽을 때면 굉장히 긴장돼요. 시인은 도대체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건지려고 했나? 시인의 감성과 나의 감성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 긴장된 상태로 읽게 되죠.
그러다 보니 시어가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시인은 당시 현실에서 사용하는 언어 중에 최고의 언어만을 골라서 사용한다고 생각해요. 시를 읽으면 그걸 느낄 수 있죠.
시는 일상에서 흐트러졌거나 둔해진 감성을 날카롭게 해줍니다. 그래서 학생들한테 늘 시를 읽으라고 해요. 카페 가는 것을 2~3번만 참고 시집 한 권 사라고 하죠. 대중 강연 때도 집에 가는 길에 시집 한 권 사서 가족에게 드리라고 해요. 일상에 찌들어 관습적으로 살면 감성이 굳어집니다. 시는 바로 그 굳어진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꾸 시를 읽으라고 하는 겁니다.

-- 가장 좋아하는 시인과 시는 무엇입니까.
▲ 정지용의 '유리창'과 '비'를 좋아합니다. 특히 '유리창'이 절창이죠. 이상이 굉장히 진보적이고 실험적이고 앞서가는 인물이지만 정지용은 한국적인 전통과 새로움이 함께 녹아든 시를 썼어요. 그런 점에서 깊이가 있고 푸근하게 느껴지죠. 자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게 낭만주의라면 정지용은 절제를 강조해요. 절제된 그 감정을 독자가 대상을 통해 느끼게 하는 거죠. 그래서 정지용은 이미지 중심으로 시를 썼어요. 이런 부분이 바로 현대적인 기법이죠. 아주 세련되고 품격을 갖고 있어서 정지용이 최고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그런데 이상을 깊게 연구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이상은 지적인 차원에서 맞대결 상대입니다. 내가 싸워 이길 수 있겠느냔 의문과 오기가 생겨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문학 연구자가 이상을 공부하기 위해 달려들죠. 이상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면이 발견되는 다면체입니다.
저는 문학 연구자 중에서 텍스트주의자입니다. 텍스트를 떠나면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텍스트가 갖고 있는 논리,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섬세하고 미묘한 의미 구조를 파헤치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거죠. 예컨대 이상이 '죽음'이란 단어를 썼다면 이 의미를 텍스트 안에서 찾아봐야 해요. 문맥을 봐야 한다는 거죠. 그것을 이상과 관계가 없는 키르케고르의 죽음이나 니체의 죽음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이상 연구자들은 텍스트를 초월하는 비평과 논의를 많이 하고 있어요. 이상의 문학이 자꾸 오리무중인 이유가 여기에 있죠. 이상의 텍스트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이상을 연구해 왔던 겁니다.

-- 지난해 '이상문학대사전'을 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인 1967년은 이상이 타계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어요. 그때 나온 이상 전집을 읽으면서 관심을 두게 됐죠. 비평가들의 작품 분석 중 허술한 부분이나 허황한 논리에 빠진 것을 찾고 보완하며 계속 연구를 해나갔어요.
이상 타계 60년인 1997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상 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했어요. 이상 연구자는 토론자로만 나오게 하고 수학과 디자인과 교수, 정신과 의사에게 새로운 해석을 요구했죠.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이상을 잘못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요.
이상을 새로 연구해 탄생 100주년인 2010년에 완성하려고 국내에서 이상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일본에도 수없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청에서는 이상의 호적을 찾았고, 경성고등공업학교 학적부를 찾아내 이상이 조선총독부 건축과에서 일하게 된 이유를 밝혀냈죠. 경성고공이 총독부의 관립학교였는데 수석졸업자를 총독부 관리로 특채하는 내규에 따른 것이었어요. 일본 도쿄의 이상이 머물던 하숙집의 위치도 정확하게 알아냈습니다.
지금 통인동 '이상의 집'도 집이 더 안쪽에 있었어요. 길이 있는 곳은 당시 개울이었고요. 양자설에 대한 것도 바로 잡았습니다. 큰아버지가 아들이 있는 소실을 들였는데 그 애를 입적시키는 바람에 원래 양자가 되려던 이상이 떨어져 나온 겁니다.
'이상문학대사전'은 바로 이상에 관한 최종보고서예요. 이상 연구에 대해서 더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제 독자들이 판단하게 되겠죠.



-- 이상의 작품은 '난해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의 작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 이상은 작품을 만드는 방법, 사물을 보는 각도 등에 대해 가장 본격적으로 고민했던 시인이에요.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죠. 그냥 보면 사물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이상은 단순하게 보는 것을 거부한 거죠. '오감도'에서처럼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투시해 보기도 하고 펼쳐놓고 보기도 한 거죠. 이상의 시도 그렇게 봐야 해요.
시각을 달리하면 내가 다니던 길에 피어난 작은 민들레를 볼 수 있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죠. 관심을 두고 각도를 달리하면 사물의 새로운 모습이 계속 발견됩니다.
이상은 사물을 보는 감성과 시각을 바꿔놨어요. 이전에 문학은 천재가 상상력을 발휘해 넘쳐흐르는 감성을 가지고 노래하면 시가 된다고 생각했죠. '아트'(Art)는 '제작'이라는 뜻이거든요. 만들어내는 거죠. 조각을 모아 집을 짓고, 돌을 깎아 조각품을 만들 듯이 문학은 만드는 거예요. 이상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아요. 고민해서 언어를 조직하고 실험했죠.
제 선배들은 한국문학이 서양문학에 비해 무척 후진적이라고 했어요. 1세기 이상 뒤떨어졌다고 했죠. 일본을 통해 서양문학을 배웠고, 서양문학을 뒤따라가기 바빴다는 거죠. 물론 그런 경향이 있긴 했지만 저는 이것을 식민지 근대의 후진성이라고 규정해요. 우리는 이상을 통해 그런 후진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죠. 이상의 시도는 당시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에서 시도했던 것과 지적(知的)·감성적 수준이 동일해요. 제가 이상에 골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오감도'를 이상의 최고작으로 꼽으셨습니다.
▲ 과거의 시인들은 대상을 아주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하는 게 시라고 생각했어요. 이상은 디테일을 전부 쳐내버렸죠. 디테일을 쳐내면 사물이 단순화하죠. 단순화는 바로 추상을 의미해요. 이상은 바로 그런 걸 시도했죠. '오감도'를 보면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를 계속 반복하잖아요. 얼마나 단순합니까. 까마귀가 되어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면 온갖 것이 다 보일 텐데 모두 쳐내고 애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만 묘사하죠. 이런 솜씨가 놀라운 거예요. 자기가 말하기 곤란한 것은 도표나 그림으로 보여주죠. 이런 '보는 시'라는 것은 이미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아내죠.

--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 시대입니다.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많은 이들이 문학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대학에서는 인문 관련 학과를 없애고 정원을 줄이고 있죠. 뭔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문학은 써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인간다운 가치를 확인하고 정립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문학은 모두 인간의 언어로 만들어져 있어요. 인간의 가치와 인간다움, 인간정신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해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죠. 당장 살기 힘들고 바쁘다고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문학이 가장 필요한 때는 지금입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문학이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문학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언어가 있는 이상, 인간이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고 글쓰기를 계속하는 한 문학은 존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매체 환경이 변화하고 놀라운 기술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매체가 문학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비판하거나 헐뜯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생겨나고, 변화가 생기면 또 그 변화를 이끌어가는 매체와 기법이 나타나는 거죠. 웹소설이나 웹툰이 문학을 흥미 위주로 변형시킨다며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품위 있는 문학작품도 계속 나오니까 그런 매체 환경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변화된 환경 속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 지난해 출간한 '문학콘서트'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 2012년에 대학에서 퇴임하면서 스스로 반성했어요. 30년 이상 교수로 봉직하면서 도대체 뭘 했는지를 돌아봤죠. 자괴감이 들더군요. 인문학의 위기는 극심하고, 제자들마저 취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이유가 뭘까를 고민했죠. 인문학자들이 외부 환경만 탓하고 스스로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독자나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대학에서 이뤄지는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거죠. 또 그동안 제가 쓴 책은 전부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어요.
문학이 왜 필요한가, 문학 속에 얼마나 인간다운 가치가 숨겨져 있는가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죠. 그래서 '문학콘서트'라는 이름으로 1년간 전국 투어 강연을 했어요. 콘서트 내용 중 제일 호응이 좋았던 것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문학콘서트 이후 대학로에서 콘서트를 10회 더하고, 교육방송(EBS)을 통해서도 대중을 만날 수 있었죠. 지금은 근거지가 미국이어서 방학 때 잠깐 한국에 나왔을 때 기회가 있으면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문학이 필요한 이유, 저의 문학 공부 이야기, 문학과 함께하며 받은 감동 등을 이야기합니다.

-- 우리나라 문장 가운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나오는 '나의 소원'을 최고의 명문으로 꼽으셨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 흔히 전문가들이 쓰는 글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 글은 너무너무 쉬워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죠. 특히 우리나라가 문화로 부강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감동을 줬어요. 지금까지도 이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몰라요. 혜안이 있었던 거죠.

-- 선생님은 문학가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문학가 중에는 조금 격렬하게 사회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무척 피곤한 일이죠. 저는 문학이 이 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를 고민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거예요. 삶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떠나면 문학은 존재 의미가 없어요.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기록하는 거죠. 비판, 긍정, 부정, 비꼬기, 칭찬 등 다양한 시각으로 삶을 기록해야 하죠. 이런 작업이 작가에게 부여된 가장 큰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에서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 아직 멀었죠. 한국문학은 정말 변방에 있어요. 터키에 오르한 파묵이라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그 사람의 번역본 소설이 있어 읽고 평가할 수 있었죠. 자연스럽게 터키에 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과연 터키의 독자가 글을 잘 쓰는 우리나라 소설가를 알고 있을까요?
미국에서 1년에 출간되는 문학작품이 1만5천 권입니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돼 나오는 다른 나라 작품은 30~50권에 불과하죠. 또 그중 일본, 중국, 인도 작품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 작품은 4~5권뿐입니다. 서점에 꽂아두면 그게 보이겠습니까. 독자층도 없으니까 출판사가 광고할 이유도 없죠. 일반 서점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문학작품이 알려지려면 우선 독자층을 만들어야 해요. 그걸 할 수 있는 게 바로 한국학이죠. 3천 개가 넘는 미국 대학 중 한국문학을 정식으로 가르치는 데는 20곳 정도예요. 일본문학을 가르치는 곳은 300곳이나 되죠.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쉽지 않죠.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됩니다. 번역은 번역대로 하고, 한국어를 보급하고,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정식으로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
외국 대학에서 한국학 강의 때 우리나라 작품을 소개하면 그 학생들이 친구들한테 안내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퍼질 수 있죠. 물론 그 학생들이 한국문학 전문가가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 중간 다리를 놓을 독자층을 양성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는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긴 합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에서만 40만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나 팔렸다고 해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일반 독자보다 대학가에서 입소문을 탔죠. 노벨문학상을 타려면 이런 작가들이 계속 나와야 해요. 작품을 잘 선정해서 번역해 내놓아야 하고, 후속작도 신경을 써야 하죠.

-- 지난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 한국문학 관련 도서 1만2천여 권을 기증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 젊었을 때부터 모은 한국문학 관련 서적이 꽤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도서관에는 대부분 있는 것이죠. 그중 중요한 자료를 틈틈이 pdf 파일로 바꿔놓고 나니까 책이 필요 없어졌어요. 미국에 가서 보니까 도서관에 한국문학 관련 책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기증하겠다고 했죠. 사람을 보내 컨테이너 하나에 싣고 갔는데 뒤표지마다 제가 기증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놓았고, 앞표지에는 제 이름이 있는 도장을 찍어 정리해 뒀더군요. 그곳 대학에 있는 여러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 내년이나 내후년까지 있어야 하니까 미국에 5년간 체류하는 셈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긴 시간을 예정했던 게 아닌데 계획이 바뀌었죠.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 과정으로 만들어보는 협의를 해보자고 해서 기간이 연장됐어요. 학생들에게 한국문학과 관련한 강의를 하는 한편 한국학과 개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한국문학 초보자를 위한 영어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어요. 한국문학을 초보 단계 학생부터 공부시킬 교재가 제대로 된 게 없습니다. 고전에서부터 현대문학까지 전체를 쉽게 설명하는 책은 작년 말 1차 원고 작업이 끝났고, 현재 한국 현대문학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책을 작업 중이에요. 내년까지 끝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박태원, 김기림 등 시인 이상 주변의 인물들을 정리해서 보여주고 싶어요. 이들은 한국문학의 수준을 서구문학의 감성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들이죠. 특히 김기림은 월북작가로 분류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올해 '한국현대문학사' 개정증보판도 낼 예정입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2월호 '인문학 이야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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