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또렷한 인천 역사현장…개발 등에 밀려 철거·매각위기
민주화운동지 인천가톨릭 회관 철거…주차장·공원 조성
전문가 "건축물 문화재 가치 없어도 의미 있는 장소라면 보존해야"
(인천=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인천의 역사적 건물들이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한 채 개발논리 등에 밀려 철거됐거나 매각위기에 처했다.
19일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에 따르면 인천시 중구는 '답동성당 주변 관광 자원화 사업'을 벌이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인천가톨릭 회관을 모두 철거했다.
지상 6층 높이의 회관이 답동성당(사적 제287호) 전방 100m 지점에 있어 경관을 헤치는 데다 시설이 노후해 관광객 유인을 방해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구는 오는 12월까지 가톨릭 회관 용지에 공원과 주차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시민단체들은 인천 민주화의 현장이었던 회관이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 채 허무하게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이곳은 1977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일원인 김병상 신부가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를 주최했다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다.
인천 5·3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노동자 대투쟁 등 당시 인천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의 집회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인천가톨릭 회관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나선 천주교 사제들과 시민들이 활동했던 공간이었다"며 "건물 시설은 문화재 가치가 없지만, 역사의 현장으로서 보존가치가 충분했는데 철거돼 너무 아쉽다"고 했다.
역사적인 장소가 한순간에 사라진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구 송월동 일대 2천㎡에 있던 근대건축물 6개가 주차장 조성을 이유로 사라졌다.
이들 건물 중 1902년에 건립된 붉은 벽돌의 건물 3개는 세제·비누제조업체인 '애경'의 모기업이 1912년에 비누공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앞서 시민단체들은 이들 건물이 인천지역 '공단의 시초'로서 가치가 있다며 철거계획 철회와 학술조사 진행을 촉구했지만, 중구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보존 명분이 없다며 철거를 강행했다.
인천시는 문화재 보호법 개정에 따라 등록문화재를 추가하고자 용역조사를 했지만, 이들 건물은 조사대상에서 빠져 있어 상황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인천 최초의 영화 상영관인 '애관극장'은 매각위기에 놓였다.
극장주가 이미 매물로 내놓았지만, 매입희망자가 제시한 금액이 낮아 처분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용지가 근저당돼 있는데다 극장이 수년간 경영악화에 시달린 점을 들어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매각처분될 것으로 관할 중구는 예상한다.
애관극장은 1894년 한국 최초의 활동사진 상설관 '협률사'의 역사를 이어받아 1925년 '애관'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2000년대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쇠락했지만, 인천 영화 부흥기를 이끌었던 명소다.
문제는 극장을 보존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극장주가 극장을 없애고 다른 용도의 시설을 운영해도 막을 도리가 없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건축물이 문화재 가치가 없더라도 많은 시민이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한 곳이라면 충분히 보존가치가 있다"며 "그러나 이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철거되거나 매각되는 건축물이 많다. 50년 이상 된 건물에 대해 철거를 심의하는 '철거허가제'가 도입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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