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참사 한달] ⑤ 불가항력 아닌 인재…소방 체계·의식 바꿔야
소방차 막는 불법차량 밀어내고 소방점검 늑장 보고도 고쳐야
"장비 탓 말고 소방 조직 효율화해야…시민의식 개선도 필요"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2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불가항력의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길거리에 늘어선 불법주차 차량은 분초를 다투는 소방차의 진입을 막았다. 겉핥기식으로 반복된 소방시설 안전 점검은 희생자들의 대피로를 차단했다. 소방 지휘관들은 "2층에 사람이 많다"는 희생자와 유족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신속하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것을 주저했다.
드러난 문제점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번 참사는 막을 수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악재는 모두 현실이 됐고 이번 참사는 인재로 기록됐다.
안전 불감증 탓에 뼈 아픈 대가를 치른 이번 참사를 겪은 소방 당국은 대대적인 개선을 도모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것이 소방차 긴급출동 길 확보 방안이다.
화재 당시 스포츠센터 앞에 4대, 측면에 11대, 진입로에 6대 이상의 차량이 불법 주차돼 있었다.
이 차량에 막혀 굴절 사다리차는 500m의 거리를 돌아서야 화재 현장에 도착했고 진입로 주차 차량을 옮기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쳤다.
소방 당국은 개정된 소방기본법이 시행되는 오는 6월 27일부터 긴급 출동에 장애가 되는 주·정차 차량을 적극적으로 치우기로 했다.
유리창을 깬 뒤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 옮기든, 소방차로 밀어내든 현장 상황에 맞게 강제 처분한다는 것이다.
적법 차량에 한해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을 지방자치단체가 강구하고 있고, 소방 당국은 주기적인 소방 순찰을 통해 계도·단속을 강화하고 차량 견인업체와의 협력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다중 이용시설 밀집지역이나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지정, 위반 시 벌금을 최대 500만원까지 올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비좁은 골목길을 신속히 진입해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경량 복합 사다리차' 도입도 추진된다.
제천 참사 때 3명을 구한 민간 사다리차처럼 규모가 작은 5t 용량의 차량에 사다리를 장착하고 물을 뿜어내는 기능만 갖추면 된다.
지금처럼 8∼16t짜리 고가 사다리차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2021년까지 모든 소방서에 경량 사다리차를 배치할 계획이다.
허술하게 이뤄져 온 소방 점검도 바뀐다.
참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는 불이 나기 한 달 전인 작년 11월 말 민간업체의 소방점검에서 불량한 소방시설이 숱하게 드러났다.
지적 사항이 무려 29개 항목, 66곳에 달했다. 작게는 소화기 불량에서 크게는 화재 감지기 이상, 스프링클러 고장, 방화 셔터·배연창 작동 불량 등이 망라됐다.
제천소방서는 이에 앞서 작년 1월 제천소방서가 나섰던 특별 점검을 한 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판정해 부실 점검 의혹이 제기됐다.
소방서 점검 때 불량시설을 적발했더라면, 혹은 불이 나기 전 민간업체의 검사에서 발견된 불량 시설을 소방서에 즉시 보고해 바로잡게 했거나 건물주가 서둘러 정비했더라면 이번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소방시설 점검 후 30일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하게 돼 있는 규정이 문제였다. 점검업체는 스포츠센터 소방시설 불량을 파악하고도 화재가 났을 때까지 소방서에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소방 점검 때 중대 위험요인이 포착되면 즉시 소방서에 보고하도록 소방시설법을 정비할 계획이다.
이를 위반하면 지금처럼 경고 처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첫 적발 때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다.
이번 참사 때 29명의 희생자 중 20명이 목숨을 잃은 2층 여성 사우나에는 탈출로가 없어 피해가 컸다. 화재 등 비상사태에 대비할 비상구가 물품 보관대에 막혀 있었다.
소방 당국은 비상구 폐쇄 등 중대 위반 행위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면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전 통보 후 표본조사 식으로 했던 소방서 특별조사도 연중 예고 없는 불시단속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를 위해 소방청은 692명인 조사요원 인력을 2022년까지 2천126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소방청은 중소 도시의 경우 화재 상황을 지켜보며 소방력을 단계적으로 증원했지만 대형 화재 발생 땐 처음부터 동원 가능한 소방력을 총출동시키는 '총력 대응 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소방당국이 추진하는 이런 개선 방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누리꾼들은 제도에 흠이 있는 게 아니라 비효율적인 인력·조직 운영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한 누리꾼은 "출동 인력 중 구조 담당은 극소수에 불과한 소방 조직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인원·장비를 탓하기 전에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법이 아닌 사람이 문제"라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쏟아진다.
한 누리꾼은 "차주는 서둘러 차를 빼고 건물주는 소방 점검과 부실 시설 교체를 성실히 해야 했는데 모두 신경을 안 썼다"면서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 시민 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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