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박완서의 산문…'한 길 사람 속'·'나를 닮은 목소리로'
1990년대 펴낸 산문집 2권 재편집해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박완서 작가(1931∼2011)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7년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게 그의 작품들은 현대 한국문학의 고전이 되어 여전히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그는 수많은 소설 작품뿐 아니라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산문집을 여러 권 남겨 독자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했는데, 그의 7주기를 맞아 산문집 2권이 깔끔한 표지와 편집으로 새로 나와 독자들을 반갑게 한다.
문학동네에서 이번에 재편집해 출간한 산문집은 '한 길 사람 속'과 '나를 닮은 목소리로'. 두 작품 모두 1990년대에 처음 출간된 것들이다. '한 길 사람 속'은 1995년 발간된 동명의 산문집을, '나를 닮은 목소리로'는 1998년 발간된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다시 편집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원고를 감수하고, 손녀 김지상 씨가 찍은 작가의 유품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한 길 사람 속'에는 작가가 유럽과 아프리카, 중국 등을 두루 여행하면서 쓴 글들과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삶에 관한 통찰을 담은 글들이 담겨 있다. 문학을 향한 열정과 자존심, 스스로 '자격지심'이라 부르는 엄격성 같은 정신도 문장들 사이에서 빛난다.
"죽을 맛으로 어렵게 쓴 내 소설한테 거는 바람이 기껏 활자 공해나 안 됐으면 전전긍긍하는 게 고작일 때도 이까짓 소설 나부랭이 만들려고 그 고생을 했나 하는 자탄의 소리를 하게 된다. 남한테 하는 그 소리는 속시원하지만 자기모멸은 참담하다. 소설가라고 불리기 시작한 지가 이십오 년째 된다. 딴 기술을 익혔다면 숙련공이 되고도 남을 기간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게 이 짓엔 숙련이라는 게 없다. 생판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고통은 매번 생급스러워 다시는 안 하고 싶어진다. 소설의 그 숙련을 허락하지 않는 오만함이 얄미워서 제까짓 소설 나부랭이가 뭐관데, 하고 우습게 여기는 척이라도 해야 견딘다." ('소설 나부랭이, 책 나부랭이' 중)
'나를 닮은 목소리로'에서 작가는 IMF 환란 이후 잔뜩 위축된 젊은이들에게 더 힘든 시기를 겪어본 어른으로서 위로를 건넨다.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그 으스대던 만 달러 시대가 졸지에 오천 달러로 줄었다고 지레 불행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흥청망청 쓰는 것보다 알뜰살뜰 쓰는 게 훨씬 더 살맛이 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가난했을 때 오히려 더 품위 있게 살았다. 가난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중략) 기(氣)는 좋은 기건 나쁜 기건 사람의 중심부에서 우러나는 것이지 소유로 은폐하거나 부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의 심정' 중)
죽음에 관해 생각한 바를 쓴 '내가 꿈꾸는 나의 죽음'이라는 글도 눈에 띈다.
"…그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다. 그러나 완전한 무가 바로 무한이란 생각도 든다. 죽음과 동시에 느낄 수는 없게 되더라도 살아 있는 이들에게 느낌을 일으킬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것, 무한한 것의 일부로 환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피는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신 꽃을 피우는 대자연의 섭리의 일부가 될 테고, 육신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대신 무심한 바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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