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에 설치된 호카곶 상징물엔 십자가가 없다
울주군, 종교계 반발로 제거…일출명소와 해넘이 명소 상징적 연결 차질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새해 내륙에서 해가 가장 일찍 뜨는 관광명소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에는 포르투갈 신트라시의 호카곶(Cabo da Roca) 상징물이 있다.
그런데 호카곶 상징물의 핵심 시설인 대형 십자가탑은 제거되고 돌탑만 우두커니 서 있다.
지난해 말 울주군이 3천만원을 들여 돌탑 상부에 십자가탑을 단 호카곶과 똑같은 상징물을 설치하다가 종교계 반발에 부딪혀 십자가탑을 제거해 돌탑만 서 있는 어정쩡한 모양이 돼버렸다.
호카곶 상징물은 울주군이 유라시아 대륙의 아시아 동쪽 끝인 간절곶과 유럽의 서쪽 끝인 호카곶을 상징적으로 연결해 간절곶의 관광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올해 1월 1일 설치했다.
호카곶 상징물 설치를 위해 울주군은 지난해 두 차례 호카곶이 있는 포르투갈 신트라시를 방문하는 등 공을 들였다. 울주군은 지난해 12월 신트라시에서 교육 및 경제교류 등을 포함해 간절곶과 호카곶 상징조형물의 상호 설치를 허용하는 우호협력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신트라시도 아시아 동쪽 끝에서 해가 가장 일찍 뜨는 간절곶의 상징성을 인정해 호카곶에 '간절곶'이라는 한글로 새긴 부채꼴 모양의 표지석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했다.
세계문화유산인 호카곶은 전 세계에서 연간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다.
대서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호카곶의 상징물이 유명한 것은 방위를 나타내는 십자가탑 모양과 돌탑 표지석에 새긴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Luis Vaz de Camoes)의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이라는 글귀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국민 90%가 카돌릭 신자여서 십자가 조형물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관광객들은 호카곶을 유럽 대륙의 끝으로 인식하고 호카곶 상징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추억을 남긴다.
그러나 울주군에서 십자가탑 모양의 조형물은 종교계 반발을 일으켰다.
울주군은 종교적 이유로 호카곶 상징물을 원형대로 설치할 수 없게 되자 신트라시에 지역 실정에 맞게 십자가탑을 제거한 상징물을 설치하겠다고 사전 양해를 구했다.
호카곶 상징물의 원형이 훼손되면서 관광자원으로서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울주군은 간절곶 해맞이 공원에 설치된 소망 우체통은 해안 아래쪽으로 옮기고 모녀상과 어부상, 새천년 기념비, 남성·여성상, 울산큰애기 노래비, 반구대 암각화 모형 등 상징성 없이 무분별하게 설치됐던 조형물 6개를 간절곶 등대 잔디광장 쪽으로 이전했다.
호카곶 상징물이 애물단지가 되면서 간절곶 해맞이 공원을 정비하고 호카곶 상징물 1개만 설치하려던 울주군의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울주군 관계자는 "간절곶은 유라시아 대륙 중 아시아에서 새해에 해가 가장 빨리 뜨고 포르투갈 호카곶은 유럽 대륙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곳으로 이 두 곳을 연결하면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판단해 호카곶 상징물을 설치했다"며 "그러나 종교계 반발이 커 십자가탑을 제거한 조형물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lee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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