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외교잡지 문 대통령 '올해의 균형자' 선정?…알고 보니 풍자(종합)
靑, 아시아 각국지도자에 자의적으로 賞이름 붙인 기사 인용해 논란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청와대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한 외교안보 잡지로부터 '올해의 균형자'(The balancing act award: Moon Jae-in)로 선정됐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풍자성 칼럼에 실린 내용을 너무 '진지하게' 해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지난 27일 페이스북 라이브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에 나와 "(미국 외교안보 잡지) '디플로맷'이 아시아 정치지도자들의 행보를 평가하면서 문 대통령을 '올해의 균형자'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고 부대변인은 당시 "'디플로맷'이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치적 균형을 잡았다'며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경제적 압박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요구에 맞섰다'고 적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미FTA 개정을 요구하고 중국의 사드 관련 경제적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강조하고 FTA 개정 요구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올해의 균형자'란 표현을 선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해석을 보탰다.
그러나 디플로맷 칼럼의 원문을 보면 풍자 조로 아시아 각국 지도자 10명을 평가하는 내용 중 일부로 문 대통령이 소개된 것이어서 청와대가 이를 정색하고 인용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 칼럼은 우리나라가 처한 외교적 처지나 문 대통령의 대응 노력 등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소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친구들(미국과 중국)이라면 굳이 멀리서 적을 찾을 필요가 있나'(With friends like these, who needs enemies)라고 적으며 한국이 처한 외교적 난국을 '풍자'했다. 이 표현은 '가까운 친구가 오히려 적보다 더 적대적일 수 있다'는 역설적 상황을 나타내는 관용어구이다.
청와대는 이 표현은 소개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객관적으로 균형외교를 정리한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즈' 사설과 묶어서 소개하다 보니 풍자적 요소가 있는 글이지만 '균형자상' 부분이 부각됐다"면서 "오역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른 아시아 정치지도자들에게 붙은 상 이름을 보면 '올해의 균형자'라는 상의 이름이 반드시 긍정적인 평가만을 담고 있다는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강한 1인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받은 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념을 기치로 소비에트연방을 세운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딴 '레닌 파워상'이다.
총선 압승 등으로 장기 집권의 틀을 닦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는 전후 사상 가장 긴 기간 재임한 일본 총리인 사토 에이사쿠의 이름을 따 '사토 상'을 줬다.
과거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끈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에게는 '지킬 앤드 하이드' 상을 줬다. 최근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고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이를 '인종청소'로 규정하는데도 수치 자문역이 오히려 로힝야족을 테러분자로 여기고 사태를 방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을 비꼰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게 주어진 상 이름은 '일단 쏘고 질문은 나중에(The shoot first, ask questions later)'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법치와 인권을 외면하면서 마약 용의자를 사살하는 초법적 처형을 부추긴 점을 비판한 표현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디플로맷'의 칼럼을 회람한 뒤 풍자성 글인 만큼 외부에 공표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페이스북 라이브에서는 이 글의 성격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 소개됐다. 홍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입맛대로 외국매체의 칼럼을 인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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