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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육청, 검인정 역사교과서 '제주 4·3' 집필기준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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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육청, 검인정 역사교과서 '제주 4·3' 집필기준안 발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시안도 마련
토론자 "평화와 인권의 미래 가치로 나아가는 모범적 사례 부각해야"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역사교과서에 '제주 4·3' 사건을 기술하는 데 필요한 집필기준안과 중학교 '역사'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시안이 처음 발표됐다.

제주도교육청은 23일 오전 교육청 대회의실에서 '2020 희망의 역사공동체'가 수행한 '검인정 역사교과서 제주 4·3 집필기준안 연구' 용역에 대한 발표회를 개최했다.
용역단이 마련한 집필기준안은 광복부터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여러 학문적 쟁점에 유의하여 주요 사건과 인물을 객관적인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했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과정과 체제로서의 특징도 비교하라고 권고했다.
냉전과 분단으로 인해 큰 희생을 치른 제주 4·3 사건에 주목해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와 명예회복 등 과거사 청산의 과정을 설명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국가폭력의 재발 방지와 평화 정착 및 인권 존중의 인식 재고 등의 관점에서 기술하도록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시안에서는 '제주도의 1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여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제주도민들은 항의 시위를 벌였으며 관공서까지 가담한 총파업을 일으켰다'고 4·3 사건의 발발 원인을 서술했다.
이어 미군정과 경찰·서북청년회의 진압,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과 주민 350명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무장봉기, 5·10 총선거에서의 제주도의 2개 선거구 과반수 미달 무효 처리, 이승만 정부의 계엄령 선포와 강경 진압, 2만5천명 이상의 도민 희생 등을 기술했다.
읽기 자료로 '제주 4·3 사건과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을 넣어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제주 4·3 사건 진상 보고서' 발간,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 권력의 잘못 인정과 공식 사과, 화해·상생·평화·인권 교육의 장인 평화 공원과 기념관 개관 과정을 설명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시안에서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당시 제주도민 28만명 중 2만5천∼3만명이 살상됐으며, 희생자 중 90%가 국군·경찰·우익단체에 의해, 10%는 무장대에 의해 살해됐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1948년 10월 여수 지역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군인들 가운데 좌익 세력이 제주도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통일정부 수립 등을 요구하며 무장봉기한 사건도 포함시켰다.
고동환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이자 전 한국역사연구회장은 '제주 4·3과 역사교과서 문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제주 4·3을 역사교과서에 바르게 서술하기 위해서는 8·15 광복 이후 민족사적 과제가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수립이었고, 이러한 과제가 냉전의 세계사적 전개와 좌우 대립이라는 민족의 분열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워졌음을 분명히 하면서, 이 과정에 제주 4·3의 역사적 위상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주 4·3에 대한 올바른 서술과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좌익의 폭동이라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상을 교정할 수 있다"며 "나아가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이라는 비극을 훌륭하게 극복해온 과정에 대한 교육도 병행함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어주게 된다"고 집필기준안 마련의 의의를 부여했다.

조한준 창현고등학교 역사교사이자 비상교육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는 '역사과 교육과정 내 제주 4·3 관련 내용 분석'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조 교사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와 경찰이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것은 한국 현대사의 크나큰 비극"이라며 "만약 군경이 자신의 역사를 뼈아프게 반성했다면 1960년 4·19 혁명에서 경찰의 발포나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에서 군인들의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주 4·3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교육하는 것을 통해 국가 기구의 정당한 사용을 촉구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하는 역사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면회 대전대학교 교수는 "제주 4·3의 원인을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위한 남로당의 선전 선동에만 돌리는 것은 도식적인 해석"이라며 "3월 1일 이후 이듬해까지 미군정 경찰과 서북청년회 등의 청년 단체가 제주도민에 가한 가혹한 탄압을 필히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제주도민은 막대한 물적·정신적 피해를 보았음에도 침묵을 강요당했으며, 유가족들은 연좌제와 국가 권력의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면서 "이승만 정부의 국가보안법 제정 이래 대한민국은 철두철미한 반공 국가가 되었고 그 결과 제주 4·3을 '폭동'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기억하게 하는 데 거의 50여 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양조훈 제주도교육청 4·3평화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제주도는 4·3의 진실규명과 치유를 통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대립이 심했던 이념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와 인권의 미래 가치로 나아가는 모범적 사례라는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4·3 특별법 제정 이후 이어진 국가공권력의 잘못을 인정한 정부 진상 보고서 확정과 대통령 사과, 진실규명과 화해의 모범이 토대가 된 세계평화의 섬 선포, 평화기념관과 평화재단 설립, 법정 기념일 지정, 일부 마을의 호국영령과 4·3 피해자 위령비를 한 자리에 모시는 죽음의 통합, 가해자(경우회)와 피해자(유족회)의 화해 선언, 민관은 물론 여야와 진보·보수가 함께 참여하는 합동 참배 등을 예로 들었다.
제주사랑역사교사모임을 대표해 나온 오영훈 남녕고등학교 교사는 "제주 4·3 집필기준안은 해방, 냉전과 분단, 정부 수립, 6·25전쟁을 포함해서 기술해야 전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교과서 시안과 관련 4·3 무장봉기의 배경인 도민사회에 대한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 분출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고, 보완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집필기준안과 교과서 시안을 확정한 뒤 교육부와 교육과정개발위원, 교과서 집필진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kh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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