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세요] 이상화의 평창 금메달, 출발 위치도 중요하다
장단점 있는 인코스-아웃코스 출발…이상화는 인코스 출발이 유리
올 시즌 고다이라에 7전 7패 했지만 모두 아웃코스 출발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스피드스케이팅 개인 종목은 2명의 선수가 다른 레인에서 함께 달린다. 한 명은 인코스에서, 다른 한 명은 아웃코스에서 스타트를 끊는다.
선수들은 레이스 중간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어느 코스에서 출발하든 뛰어야 하는 거리는 같다.
그러나 출발 위치가 경기력에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특히 단거리 종목에서 그렇다.
출발 위치에 따라 레이스 운영 방식과 선수에게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다를 수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이상화에게 출발 위치 배정이 상당히 중요한 이유다.
◇ 인코스 출발은 곡선주로 레이스, 아웃코스 출발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유리 = 출발 위치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500m 인코스 출발의 장점은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속력을 유지하기가 편하다는 것이다.
인코스에서 출발한 선수는 첫 곡선주로를 안쪽에서 뛰다가 코스 중간 아웃코스로 빠져나온 뒤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아웃코스를 돌아야 한다.
선수들은 가속으로 인해 경기 초반보다 후반부 스피드가 더 빠른데,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아웃코스를 돌 경우 원심력으로 인해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는 현상을 방지하기에 수월하다. 원을 크게 돌기 때문이다.
반면 아웃코스에서 출발한 선수는 첫 곡선주로를 바깥쪽에서 뛰다 마지막 곡선주로는 인코스로 돌아야 한다.
좁은 원을 돌아야 해서 스피드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몸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무릎과 발목, 허벅지가 잘 지탱해줘야 한다.
마지막 곡선주로에서의 차이 때문에 대다수 단거리 선수들은 아웃코스보다 인코스를 선호한다.
그렇다고 아웃코스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웃코스에서 레이스를 시작하면 마지막 구간에서 상대 선수의 등을 보며 뛸 수 있다.
'목표'가 코앞에 있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
◇ 이상화가 선호하는 스타트 위치는 인코스 = 이상화는 얼마 전까지 아웃코스 출발을 좋아했다.
승리욕이 강한 이상화는 레이스 막판 상대 선수의 등을 보며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 능력을 과시했다. 2013년 11월에 작성한 36초36의 세계기록도 아웃코스에서 출발해 세웠다.
그러나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이상화는 인코스 출발을 선호하게 됐다.
그는 지난 시즌 고질적인 왼쪽 무릎 부상과 오른쪽 종아리 통증에 시달렸는데, 부상 여파로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스케이팅 자세가 흔들리는 모습이 많이 노출했다.
특히 아웃코스에서 출발해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작은 원을 돌 경우, 눈에 띄게 밸런스가 무너졌다.
지난 2월 초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 500m에서 아웃코스로 출발했다가 마지막 곡선 주로에서 자세가 흐트러졌고, 같은 달 일본에서 열린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아웃코스를 배정받아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이상화는 인코스에서 스타트를 끊은 고다이라 나오(일본)에게 근소한 차이로 금메달을 연거푸 내줬다.
이상화는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몸이 버텨주지 못할 것 같은 걱정 때문에 레이스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SBS 제갈성렬 해설위원은 "이상화가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너무 안쪽으로 붙어 달려 자세가 무너졌다. 고다이라에게 밀린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 이상화의 7전 7패 기록, 모두 아웃코스에서 출발 = 이상화는 지난 11월부터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4차 대회 7차례 500m 레이스에서 모두 고다이라에게 패했다.
고다이라는 7차례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했고, 이상화는 2위 다섯 차례, 3위 한 차례, 7위 한 차례를 기록했다.
실력 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지만, 이 결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숨어있다.
고다이라는 7번의 레이스를 모두 인코스에서 출발했고, 이상화는 모두 아웃코스 스타트를 배정받았다.
세계랭킹에 따라 레이스 순서와 스타트 코스가 정해져 있어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이상화는 7차례 레이스에서 단 한 번도 고다이라를 꺾지 못했지만, 모두 불리한 아웃코스 출발에서 나온 결과였다.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출발 위치는 추첨을 통해 배정받는다.
만약 이상화가 인코스에서 출발하고, 고다이라가 아웃코스에서 레이싱을 펼친다면 예상 밖의 결과도 나올 수 있다.
이상화도 이런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귀국길에서 ISU 월드컵 레이스를 모두 아웃코스로 소화한 것에 관해 "아웃코스 스타트 실전 훈련을 많이 한 격"이라며 "내겐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인코스 출발을 배정받을 경우, 역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올 시즌 이상화가 인코스, 고다이라가 아웃코스에서 출발해 맞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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