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광풍 속에 피어난 금지된 사랑과 파국 '튤립피버'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1620년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관을 닮은 아름다운 꽃봉오리와 그 희귀함에 반한 사람들이 앞다퉈 튤립을 사들이고, 튤립 한 뿌리 가격은 집값과 맞먹을 정도로 치솟는다. 튤립은 더는 꽃이 아니라 투기 대상으로 바뀐다. 생선장수도, 가난한 화가도 모두 한 방을 노리고 투기에 뛰어든다.
'튤립피버'는 튤립 광풍이 불어닥친 17세기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금지된 사랑과 파국을 그린 정통멜로 영화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수도원에서 자란 젊고 아름다운 여인 소피아(알리시아 비칸데르 분). 그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이 많은 부유한 상인 코르넬리스(크리스토프 왈츠)와 결혼한다. 처음부터 애정없는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 없을 터. 더구나 남편은 아들을 낳기만을 독촉한다.
조금씩 불안하던 이들 부부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젊은 화가 얀(데인 드한)이 찾아오면서부터다. 소피아와 얀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남편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한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은 급기야 코르넬리스를 배신하려는 위험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영화는 허름한 술집 지하에서 튤립 경매에 뛰어든 사람들의 흥분된 표정과 사랑의 열기로 달뜬 두 남녀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투기와 사랑은 모두 현실에 눈멀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하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튤립 거품이 '왜 꽃 한 송이가 이렇게 비싸지?'라고 누군가 의문을 품는 순간 순식간에 꺼졌듯, 이들의 사랑도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 파국을 맞는다. 극중 화자(話者)는 하녀이자 소피아의 친구인 마리아(홀리데이 그레인저)다. 마리아는 "그때 우리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영화는 두 남녀의 '격정멜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코르넬리스의 고뇌, 마리아의 또다른 사랑, 그리고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두 여인의 연대 등 다층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본류인 소피아와 얀의 멜로 부문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영화는 화려한 의상과 소품, 암스테르담의 뒷골목과 장터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냈다. 어떤 장면은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다.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천일의 스캔들'(2008)로 감각적인 시대극을 연출한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신작이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 등에서 섬세한 감성을 보여준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가 돋보인다. 청소년관람불가. 12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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