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서 "데뷔 8년만에 신인상, 기쁨보단 고민 앞서요"
"'박열' 가네코 후미코 알게 되고 반성…이제는 당당히"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올여름 개봉한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만큼 강렬한 여성 캐릭터는 한국영화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시 한 편 읽은 게 전부인데, 식민지 조선에서 건너온 독립운동가 박열과 혁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마음 먹고 서툰 한국어로 동거를 제안한다. 감옥에 갇혀서도 동지들과 인터내셔널가를 목청 터져라 부르고, 법정에서 일왕을 향해 '악마적 권력'이라며 독설을 날린다.
최근 서울 수송동에서 만난 최희서는 아직도 이 무정부주의 혁명가에게 빠져 있는 듯했다. '박열'로 오랜 무명의 설움을 벗고 연말 각종 영화상 트로피를 휩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하고 나서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원래 성격은 많이 다르지 않아요.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가네코 후미코는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더 강하고 견고하게 만들었어요. 예전엔 '여자로서 이런 건 포기해야 하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생각하고 얘기해요. 가네코 후미코를 알게 되면서 반성한 부분이 많아요."
'동주'가 최희서의 존재를 알렸다면 '박열'은 그를 충무로의 확실한 차세대 주자로 각인시켰다. 서른한 살, 적지 않은 나이의 '중고 신인'이다. 대학 때 출연한 첫 영화 '킹콩을 들다'로부터 8년. 최희서는 기쁨보다 고민이 앞선다고 말했다.
"데뷔한 지 8년 만에 신인상을 탔는데 기분이 묘해요. 스물다섯 살 정도에 받았다면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연말을 보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야 할지 고민되고 두렵기도 해요. 앞날에 대한 고민 때문에 기뻐할 겨를이 없어요."
영화와 연극·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연기했지만 대단한 반응은 오지 않았다. 드라마를 제외하면 교통비 정도만 받았고 무보수로도 출연했다. 오디션에 떨어지기도 부지기수였다. 통·번역과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한 눈을 판 적은 없었다. '동주'에 캐스팅된 일화는 이제 유명하다. 최희서는 지하철에서 대사 연습을 하다가 '동주'의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의 눈에 띄었다.
"감독님이 명함을 주실 때만 해도 각본을 쓰고 있다는 말은 안하셨어요.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해서 특기는 일본어라고 적었어요. 감독님을 만난 건 특별한 경험인데 작품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윤동주 시인 이야기인데 일본 여자 역할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종교가 없는데도, 그날 바로 집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했어요."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과 함께 한 '동주'와 '박열'에서 모두 일본 여성을 연기했다. 윤동주의 영문 시집 출간을 돕는 '동주'의 쿠미는 윤동주가 한글로 적어준 시집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지 못한다. 어린 시절 일본에 오래 살아 일본어가 유창한 그에게 최적의 역할들이었지만, 이제는 변화를 시도할 때도 됐다.
고민 끝에 선택한 차기작은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을 통해 제작되는 작품이다. 상업영화에서 다시 독립영화로 돌아간 셈. 최근 촬영을 마친 최희서는 "이제는 가네코 후미코를 연기한 최희서가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아워 바디'의 자영은 가네코 후미코와 굉장히 달라요. 과묵하고 의사표현도 잘 하지 않고 혼자서 시름에 잠겨요. 하지만 원하는 걸 찾으면 몰입하는 성격이에요. 가네코 후미코는 표정도 다양하고 대사가 많고 역동적이잖아요. 자영은 표정으로도 대사로도 표현을 잘 안 해요. 클로즈업이 많은데 눈빛이나 호흡으로 표현해야 해서 새로운 도전이었죠. 내성적이고 소통하지 않는 고시생인데, 운동으로 몸이 변하면서 마음도 변해요. 시나리오를 읽고 자영이 겪는 변화가 너무 좋았죠. 20∼30대 여성들이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최희서의 목표다. '박열' 이후로는 시나리오가 여럿 들어오고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래도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캐릭터라면 오디션에도 계속 지원할 계획이다.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도 '레 미제라블'에 출연하면서 오디션 봤어요. 저는 연기를 계속 해왔지만 관객에게는 신인 배우잖아요. 배우로서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지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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