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서 럭셔리 사라지나…EU "명품 온라인판매 제한은 적법"
EU법원 "명품 '아우라' 중요" vs "명품 정의 어려워…경쟁저해 우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명품 기업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사 상품의 온라인 판매를 제한할 수 있다는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6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명품 기업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할 목적을 갖고 있고 유통업체들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유통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온라인 판매 금지와 같은 특정 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ECJ가 취급한 사안은 미국 뷰티 그룹 코티와 독일의 공식 유통업체인 파르퓌메리 아크젠테의 송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티는 아크젠테가 아마존을 통해 자사 상품을 판매하자 독일 법원에 제소했다.
독일 법원으로부터 유권 해석을 의뢰 받은 ECJ는 결정문에서 명품은 물질적 특징 뿐만 아니라 '아우라(aura)'를 구성하는 이미지에도 의존한다고 말하고 "이런 아우라는 다른 유사 상품들과 차별화하는데 긴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미국의 코티가 독일 파르퓌메리 아크젠테의 온라인 판매를 제한한 것은 경쟁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코티 측은 이에 대해 선별적 유통망이 필요하고 정당함을 확인해주는 결정이라며 환영을 표시했다.
엑산 BNP 파리바 증권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상품의 유통을 더욱 잘 관리하고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만큼 명품 업계에는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논평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각종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통한 명품 판매가 늘어나는 것을 곤혹스러워하던 유럽의 명품 기업들로서는 유통망을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얻은 셈이다.
아마존 같은 사이트에서 자사 제품이 대중 브랜드들과 나란히 노출되고 있고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명품의 '아우라'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었다.
루이 뷔통 모에 헤네시(LVMH)과 케링, 리슈몽 같은 명품 기업들은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자체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열거나 전문 사이트와 제휴하는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러나 ECJ의 적법 결정이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결정을 보는 파르퓌메리 아크젠테 측의 시각도 코티 측과 사뭇 다르다.
아크젠테의 카이 렌헨 최고경영자(CEO)는 "이른바 명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명품의 이미지를 유지하는데 필요하고 합리적인 조건에서만 인터넷 판매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티가 다수의 대중적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건드린 것이다. 명품 브랜드가 아닌, 양산 브랜드에 대해서는 온라인 판매를 제한하기가 곤란해지리라는 의미다.
코티는 클로에, 커버걸, 캘빈클라인을 포함해 모두 77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절반은 일반 소비재 제조회사인 프록터 앤드 갬블(P&G)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영국 포럼인 시들리 오스틴의 스티븐 킨셀라 EU경쟁법 부장은 ECJ가 가능한 한 명품들에만 국한할 목적으로 신중하게 결론을 끌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 관측통들은 명품의 정의가 쉽지 않으며 ECJ의 이번 결정으로 오히려 양산 브랜드들도 대담하게 인터넷 판매를 금지하고 나설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로펌 개릭스의 알폰소 라마드리드 변호사는 앞으로 개별 국가 법원에서 더 많은 송사가 벌어질 수 있으며 판결도 분규 대상 상품의 특성, 명품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U집행위는 ECJ 결정이 시장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명확성과 법적 확실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EU 전역에서 일관적인 공정법규의 적용을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EU가 역내의 디지털 단일 시장 구축을 꾀하면서 그 장애물을 해소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과는 모순되는 입장이다. 아마존과 이베이 등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인 컴퓨터·커뮤니케이션 산업협회도 이런 허점을 꼬집었다.
야콥 쿠차르칙 협회 부회장은 "오늘 나온 판결은 디지털 단일 시장 육성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고 말했다.
그는 명품업체들이 모든 상품에 대해 절대적 판매 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백지수표를 준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의 선택과 온라인 경쟁을 저해할 공산이 크다고 주장했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명품 업체들이 온라인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동원할 지렛대가 거의 없다. 제조사가 도매상에 일단 상품을 공급하고 나면 판매 방식에 간섭하는 것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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