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히 떠난 '줄리아 리'…죽어서도 재회하지 못한 부부
1982년 이구 씨와 이혼한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1897∼1970)과 이방자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이구(1931∼2005) 씨의 마지막 순간은 비참했다.
이구 씨는 2005년 7월 16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탓에 누구도 임종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의 영결식은 7월 24일 서울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당시 이구 씨의 전 부인인 줄리아 리(본명 줄리아 멀록)는 마침 한국에 잠시 머물고 있었지만, 장례식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휠체어에 앉아 노제를 바라보는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을 뿐이다.
줄리아 리가 지난달 26일 미국 하와이의 요양병원에서 쓸쓸하게 숨진 사실이 6일 알려졌다. 그의 장례는 수양딸이 치렀고, 유해는 바다에 뿌려졌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는 뉴욕에서 활동하던 건축가 이오 밍 페이(I.M.Pei)의 사무실에서 이구 씨를 만나 결혼했다. 나이는 줄리아 리가 8살 더 많았지만,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던 이구 씨는 그녀에게 연정을 느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요청으로 1963년 한국에 들어와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했으나, 푸른 눈의 며느리를 환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종친회가 부부 사이에 후사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혼을 종용하자 두 사람을 별거를 시작했다. 이구 씨는 경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자 1979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결국 3년 뒤에 부부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줄리아 리는 이혼한 뒤에도 한동안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의 한 호텔에 의상실 '줄리아 숍'을 열었고, 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생활고를 겪었던 그는 1995년 미국 하와이에 정착했다. 2000년에는 보관해오던 왕실 유물과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으나, 영구 귀국한 상태였던 이구 씨와는 만나지 못했다.
이구 씨의 삼종질(9촌 조카)인 이남주 전 성심여대 교수는 "줄리아 리는 남편을 항상 그리워해서 삼종숙부의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며 "죽은 뒤에는 유해의 일부라도 한국에 보내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줄리아 리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혼한 탓에 사후에도 재회하지 못했다. 이구 씨의 무덤은 고종과 순종이 묻힌 남양주의 홍유릉(洪裕陵) 영역에 마련됐으나, 줄리아 리의 유해는 바다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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