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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판결'로 정권에 맞선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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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판결'로 정권에 맞선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맞아

인혁당 사건서 '사형반대' 소수의견…대법원, 1일 추념식 개최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1975년 4월 8일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로 꼽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이 확정되는 순간 13명의 대법원 판사 중 단 한 명만이 질끈 눈을 감았다.

재판 도중 공판조서가 변경되는 등 1, 2심 재판에 위법적 요인이 많으므로 다시 재판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유일하게 낸 고(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었다.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소신 있는 판결을 내렸던 이 전 대법원장은 강직한 성격 때문에 별명이 '통영대꼬챙이'였다. 이 전 대법원장의 서세(逝世) 10주기를 맞아 그의 37년 판사시절 행적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생전 인터뷰 등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가장 안타까워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발동으로 민심이 크게 동요하자, 박정희 정권이 1974년 소위 인민혁명당이라는 이적단체를 조직하려 했다는 이유로 영남지역 진보학자 등 8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중앙정보부의 조직적인 개입으로 이들에 대한 공판조서가 누더기처럼 날조됐지만 1, 2심 재판부 격인 비상군법회의와 비상고등군법회의는 연루자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듬해 4월 8일 대법원도 사형을 선고했고, 판결이 내려진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당시 유일하게 사형에 반대했던 이 전 대법원장은 평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질 때 '아이고, 이렇게 생명이 사라지는구나' 싶었다. 우리 대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잘한 재판'으로 잘못 판단한 책임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른바 '고영근 목사 긴급조치 위반사건'에서도 권위주의 정권의 미움을 살 판결을 내렸다.

고 목사는 1977년 설교시간에 "일반인은 묘지를 4평만 쓰라고 하면서 육영수 여사 묘지는 왜 2천평이나 되냐, 양주 30억원 어치를 수입했는데 유신 주역들이나 먹지 누가 먹느냐"며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에서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붙잡혔다.

이 전 대법원장은 당시 대법원 판사로 이 사건을 맡아 "사실을 왜곡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대부분 보도된 내용"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안기부를 통해 이 전 대법원장을 미행하고, 도둑으로 위장해 집안을 뒤졌지만 아무런 흠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독재 정부에 저항하며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린 판사로서 이름을 알렸던 이 전 대법원장이 노태우 정권 시절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장에 임명된 일화도 종종 회자된다.

1988년 2차 사법파동으로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임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정기승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국회는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고, 노태우 정권은 법조 안팎에서 존경을 받던 이 전 대법원장을 새 대법원장으로 지명하게 된다.






이 전 대법원장은 임명 후 청와대에 사법부 독립 보장을 요구하며 대법관 임명 관행을 개선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 2명을 제청해 그중 한 명을 대통령이 낙점하던 관례를 깨고 1명만 제청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소신 있는 판결을 내렸다가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회창·김덕주 대법관을 대법원으로 다시 불러온 것도 이 전 대법원장의 업적으로 꼽힌다.

이 전 대법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장 존경한 인물로 이 전 대법원장을 언급하면서 재조명됐다.

김 대법원장은 "이 전 대법원장의 소수의견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 헌재소장도 "이 전 대법원장의 소수의견을 보고 교과서에만 있는 줄 알았던 헌법 정신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007년 12월 숙환으로 별세한 이 전 대법원장의 서세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다음 달 1일 오전 11시 대법원 2층 중앙홀에서 추념식을 열 예정이다.

hy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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